6화 제목: 말하려다 멈춘 순간

by 새벽

그날도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분명히
지금 말해야 할 것 같았는데,
이 타이밍을 놓치면
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나가 버릴 것 같았는데.

입술까지 올라온 말은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금 이 말이
괜히 분위기를 깨는 건 아닐까.’
‘이 정도로 말하는 게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그렇게
말은 마음속에서만
몇 번이나 형태를 바꿨다.

조금 부드럽게 고쳐보고,
조금 덜 솔직하게 줄여보고,
아예 농담처럼 바꿔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 선택은
늘 익숙했다.

말하지 않으면
적어도 관계는
지금 모습 그대로 유지될 테니까.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상대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만 자라났다.

‘아까 말했어야 했나.’
‘그 말이 그렇게 큰 말이었나.’
‘다음에는 꼭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들은
관계보다
나를 더 오래 붙잡았다.

나는 늘
말하지 않은 쪽을 선택한 뒤에야
스스로를 이해하려 애썼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떠올리고,
상황을 합리화하고,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지’라고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그렇게 넘긴 순간들이
하나둘 쌓이자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의 위치를 잃어갔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그 기준이
점점 흐려졌다.

이상하게도
가장 조심했던 관계에서
나는 가장 자주
나를 숨겼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상처받는 내가
드러나는 게 더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 번
넘어갔다.

그날도
결국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무서워했던 건
상대의 반응이 아니라,
내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다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꺼낸다는 건
그 마음을 인정하는 일이었고,
인정하는 순간
되돌릴 수 없게 될까 봐
겁이 났던 것 같다.

아직도
그날 하지 못한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선명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관계가 지켜진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서
조금 멀어졌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다른 질문을 해본다.

‘그때 왜 말하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그 말은
나에게 얼마나 중요했을까’라는 질문을.

아직은
매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제는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모른 척하지 않으려 한다.

그 침묵 안에
분명
내 마음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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