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나는 여행이 좋아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혼자, 가족들, 친구들과도 다녀봤지만 어떤 여행이 제일 좋다 라고 단정지어 말 할 수 없다. 힘들면 힘든대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여행은 추억을 남겨준다. 그래서 여행은 다 좋다.
혼자 다녔던 여행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은 통영 여행이다.
때는 2011년, 무려 14년 전 이야기 이다. 14년 전 이야기지만 내 생애 최초라 생생하다.
이때만 하더라도 여자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하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아 부모님께는 친구들과 간다고 미리 (거짓)말씀을 드렸다. 혼자 간다고 하면 분명 못가게 하셨을게 뻔하니까.
나는 완벽한 J는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 하는 여행이라 미리 계획을 세웠었다. 변수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14년전에는 인천터미널에서 통영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에 2대 밖에 없었다. 아침 8시 1대, 오후 3시 1대 였던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보니까 버스가 하루에 4대나 있다. 그때도 하루에 버스가 4대 있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다. 고속버스가 아니라 시외버스라는건 안 비밀이다. 고속버스는 출발해서 도착 지점까지 중간에 휴식을 위해 휴게소 들리는 것 외에는 버스가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시외버스는 고속버스와 달리 지방 곳곳의 터미널을 들린다. 마치 시내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서는 것처럼 말이다.
아침 8시 통영가는 버스를 타기위해서는 아침에 못해도 7시에는 터미널 가는 버스를 타야했는데, 늦잠을 잔 탓에 택시를 탔다. 부랴부랴 도착한 터미널에서 통영가는 시외버스 티켓을 구매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탄 나의 모습은 머리를 감고 수건을 말아 올린 모습이었다. 늦잠으로 제대로 채비를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머리 감기를 포기 할 수 없었기에 버스에서 머리를 말려야겠다. 생각하고 집에서 출발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전날 짐을 미리 챙겨놨기에 머리는 감을 수 있었다.
2박3일을 오롯히 처음 떠나는 여행이라 많이 설레였던 탓에 쉽사리 잠들지 못함이 늦잠의 원인이었다. 그동안 혼자 떠났던 여행은 대부분 당일치기라 또 다른 설렘이 나의 잠을 방해했었다. 늦잠은 잤지만 8시 출발하는 통영행 버스를 타는 나의 계획은 흐트러 지지 않았다. 흐트러진 나의 계획은 아침을 먹지 못했다는 것 뿐이다.
빈속으로 탄 버스안에서 머리를 말리고 하지 못한 화장을 하고 어제 미처 자지 못했던 잠을 도착할 때까지 잤다.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이미 1시가 넘은 상태였다. 배는 고팠지만 숙소에 짐을 놓고 나와 밥을 먹을 생각으로 숙소를 들러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1층에는 숙소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편의점이었고, 편의점 윗층으로 방이 있었고, 공동 샤워실과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숙소였다. 돈없는 여행자에게는 이것도 감지덕지다.
체크인을 하고 버스를 타고 나와 통영시장으로 향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아침도 점심도 거른탓에 진짜 빨리 뭐라도 입에 넣었어야 했다. 통영 먹거리중 아직도 검색하면 나오는게 멍게 비빔밥이다. 그래서 나도 멍게 비빔밥을 먹기로하고 시장입구에 줄지어 있는 가게중 한곳에 들어갔다. 멍게 비빔밥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와 사진을 파바박 찍고, 쓱쓱 비벼 한 입 넣었는데, 확!! 비렸다. 이때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나의 처지가 그걸 깨달을 처지가 아니었다. 이미 시간은 오후 2시가 훌쩍넘은 상태였고, 나는 배가 너무 고팠고, 무엇보다 멍게 비빔밥이 9천원이나 한 비싼 가격이었다. 지금 가격도 아니고 14년전 가격인데 한끼에 9천원이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식대였다. 그래서 더욱 버릴 수 없었다. 비렸지만 꾹 참고 몇 숟가락을 더 욱여 넣었다. 그 비릿함을 참고 다 먹기에는 나의 비위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남기고 나와 비린맛을 버리려고 껌도 씹고, 커피도 사먹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비릿함은 가시지 않았지만 동피랑 마을의 벽화를 보고 사진도 찍고 하며 찐 혼행을 즐기며 비릿함을 털어냈다.
동피랑 마을 벽화 구경을 한참하고, 거북선을 보러 조선군선으로 이동했다. 14년전 기억으로는 매표소가 없었는데, 지금은 매표소가 생겨 표를 구매해야지만 거북선 안에를 구경할 수 있다. 그렇게 거북선 안에도 구경하고 다음 목적지인 케이블카를 타러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로 이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표를 구매하고 케이블카를 혼자 탔고, 혼자 탄 케이블카 안에서 신나게 혼자 사진을 찍을때까지만 해도 내가 멀쩡한 줄 알았다. 케이블카에 내려 조금 올라가야 미륵산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게 혼자 신이나서 사진을 찍고 놀았다. 혼자 왔지만 누군가 찍어준 것처럼 타이머를 맞춰놓고 사진을 여러장을 찍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내려가는 길부터 내 몸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머리가 조금씩 아팠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아픔은 커졌다. 그래서 숙소로가 쉬기로 했다. 숙소가서 쉬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괜찮아 지지 않았다. 하루종일 먹은거라고는 점심때가 다 지나 먹었던 멍게 비빔밥과 커피 한 잔이 다였는데, 그 마저 다 게워냈다. 속은 답답했고, 속은 자꾸 게워냈고, 두통이 엄청 심했고, 식은 땀 까지 났다. 이게 왜 이러는지 감도 못잡을 정도로 정신없이 아팠는데 그래도 이 상황을 해결해야했다. 일단 근처 약국이 있는지 확인하기위해 숙소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1층 편의점으로 갔다. 사장님께 근처 약국이 있냐고 했더니 약국이 없단다. 내가 잡은 숙소위치가 좀 시골 안쪽이라 약국도 읍내 가야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비상약이라도 있냐고 여쭤봤는데 비상약도 없으시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난수록 두통은 심해졌고, 복통도 심해졌고, 어지러웠고, 식은 땀이 계속났다.
사장님이 자기는 편의점을 봐야하니 본인 자동차 키를 나에게 내어주며 운전할 줄 알면 읍내를 다녀오라고 하신다. 사장님, 저 지금 운전할 몸상태가 아니라서요, 혹시 택시 한대만 잡아주세요. 했더니 알겠다고 답하시고 나가시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 사장님이 돌아오셨다. 경찰차와 함께...
너무 시골이였고, 14년전에는 카카오택시도 없었어서 동네 순찰하시던 경찰차를 잡아오셨다. 찬밥 더운밥 가릴처지가 아니었기에 경찰차를 타고 읍내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경찰차 뒷자리는 밖에서 문을 열어줘야만 문이 열린다는것을... 안쪽에서는 문을 여는 손잡이가 없다는것을.
경찰차를 타고 달리는데 내 몸 상태는 심각해졌다. 속이 또 좋지 않았다. 응급실 도착해서 경찰분이 뒷문을 열어주자마자 뛰어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또 다 게워냈다.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 경창분들께서 응급실 진료 접수를 해주셨다. 참 감사한 분들이었는데, 내가 아파서 정신이 없었어서 감사하다는 표현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그때 도와주셨던 경찰관 분들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요. 화장실에서 게워내고 응급실에 들어가니 거기 계신 모든 분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아무래도 타지에서 온듯한 여자사람이 경찰차를 타고왔으니 무슨 사고가 나서 온건가 하는 눈으로 바라보셨다. 하지만 그냥 순찰하다가 아픈 시민이 있어 태워왔다는걸 경찰분들께서 설명하셔서 그런지 금방 집중된 시선은 분산되었다.
나의 상황을 의사 선생님께 설명했고 링겔 한대를 처방해주셨다. 링겔을 맞으며 1시간 30분쯤 잔거 같다. 그러고 나니 신기하게도 몸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급체한거 같다고 하셨다. 많이 체해봤지만 그렇게 여러가지 증상과 통증은 처음 겪었기에 체한지 몰랐었다. 링겔을 다 맞고나와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약을 먹어야해서 숙소 1층 편의점에서 죽을 하나 사서 올라왔다. 진짜 괜찮아 졌는지 배가 고팠다. 죽을 먹고 약을 먹었다. 이 모든 일이 2박 3일 일정 중 하루만에 일어난 일 이다. 이때 이후로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비상약을 꼭 챙겨 떠나는 습관이 생겼다. 어딜가도 아프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이 경찰차를 타고 응급실 갈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싶다. 제대로된 혼자하는 여행에 나는 그렇게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난리통을 겪으면서도 내가 계획했던 여행 계획을 다 수행하고 왔다. 그래서 14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기억되지 않나 싶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좋지만 무슨일이 일어나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일이라면 일어나도 좋은 일이 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