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돼 집에 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다행히 우산을 챙겼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걸었다. 우산 없이 뛰어가는 사람들이 보기 얄미울 정도로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육교 계단을 오르자 엘리베이터 처마 밑에 선 제법 키 큰 학생 하나가 보였다. 앳된 얼굴, 고등학교 1학년쯤 됐을까. 학생은 비가 그치기라도 기다리는 건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씌워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딱히 말 걸 힘도 없어 지나쳤다. 느리게 육교를 가로질러 건너편 계단에 이르러 내려가려는데 엄청나게 큰 우산이 불쑥불쑥,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세 명이고 네 명이고 모두모두 들일 수 있을 것 같은 품 넉넉한 우산 아래 보인 것은 우산만큼이나 옆으로 뻗친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였다.
아까 그 학생의 엄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큰 우산을 든 것 하며 기다리는 사람을 향하는 듯 서두르는 걸음걸이는 둘째치고서라도 표정, 그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꿈꾸는 듯 헤벌어진 입과 너무나 해맑아 보이던 작은 눈초리. 그렇게 순수하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의 표정을 본 적 있었나, 쓰는 동안에도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펑퍼짐한 몸과 옷, 화장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민낯에 뻗칠 대로 뻗친 파마머리를 하고는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으리라는 확신에 찬 표정을 짓고서 열심히 계단을 오르던 아줌마. 난 그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봤던 적이 언제였나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건, 엄마일 수밖에 없었다.
그 표정에 놀라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엘리베이터 처마 밑에 있던 아이는 어 왔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처마를 나와 품 넓은 우산 아래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자기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까.
커다란 우산 아래 다리가 넷이다. 같은 집으로 향할 길고 또 짤막한 다리들이.
하루의 끝에서 만나는 풍경들은 때론 그토록 눈물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