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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Aug 07. 2024

치통

특대형 구르프의 그녀 (단편소설)

오늘도 다르지 않다. 그녀의 이마 위엔 앞머리를 들어 올린 특대 구르프가 달려있다.

그녀는 40대 후반일 것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나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출근한다. 출근길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그녀와 내가 멀찍이 마주 서는 서로를 지켜보는 일도 허다하다. 오늘도 6차선 맞은편 횡단보도 앞, 이마에 대형 구르프를 단 그녀가 서 있다.  


나는 특대형 구르프를 달고 있는 그녀, 중년여성의 차림새가 마땅치 않다.

순간 치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눈이 마주친 순간 치통은 더했고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녀가 보란 듯이 턱을 사선으로 치어들며 나를 지나친다. 그녀도 나의 찌푸린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넙데데한 여자의 얼굴엔 선크림이 잔뜩 발라져 있어 턱을 치어드는 순간 뒷목의 시작 부분부터 제 피부색이 드러났다. 하마터면 혀를 찰 뻔했다. 어린애들이야 그렇다 쳐도 저 나이에 무슨 짓이란 말인가! 조금만 부지런히 출근을 준비했다면 길에서 저 흉물스러운 모양은 안 보여도 되었을 것을!

그녀가 나를 비껴 10여 미터를 지나칠 때쯤 나도 모르게 한 번의 도리질을 한다.


그녀는 뻔뻔하고 그악스럽다

아니,

그녀는 당당하고 억척스럽다


그것도 아니다.


그녀는 살아내야만 했다

분주한 아침, 오늘도 그녀는 집안일에 쫓겨 덜 마른 머리에 구르프만을 끼운 채 집을 나선다

젊은이의 유행을 따라 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그것도 아니다.

나는 상상한다.

그녀는 대체 왜 그렇게 이마를 가린 앞머리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상상 속에서 그녀도 만들어지고 스러진다.

아침 빈속에 마신 커피 탓인가? 쓰린 속을 느낄 때마다 마땅치 않아 고개를 돌린 내 얼굴이 함께 떠오르고 또 어그러진다.


오늘도 사무실에 제일 먼저 당도한 것은 나였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실내화로 갈아 신는 사이 계약직으로 들어온 젊은 여자가 머리에 그루프를 잡아 빼며 뒤이어 들어선다. 붙임성 있는 젊은이의 애교 있는 목소리에 가벼운 목례로 답한다. 그녀와 나의 출근 뒤 이십 여분이 지나서야 하나 둘 사람들이 속속 들어선다.

다른 때보다 한 참을 늦은 부장이 내 자리로 와 조퇴여부를 다시 확인한다.

그가 남긴 향수 냄새가 바뀌었음을 감지한다.


오늘은 한시를 넘겨 조퇴를 해야 했기에 오전 내내 쉬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찬 한잔 하자는 동료들의 부름에도 바쁘다고 손사레를 쳤다.

후배가 다가와 점심을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을 때에야 시간을 확인할 만큼 일에 빠져 있었다.

통증이 심해 하루 병가를 낼까도 싶었지만 오전 중으로 끝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에 조퇴를 선택한 것이다.

나의 책임감을 인정하는 부장은 오늘 반나절의 출근에 고마움을 표하며 후배들과 무리져 나간다.

"그럼 저희는 식사하러 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아침처럼 다시 한번 곁눈질을 하며 미소를 보냈고 무리 지어 나가는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치통 탓에 여러날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사람들이 거의 빠진 1시, 책상을 정리하며  나갈 채비를 한다.

쟈켓과 백을 팔에 걸치고 슬리퍼를 책상밑으로 밀어 넣으며 치과 예약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병원은 정확히 두시 5분 전에 도착했다. 내가 들어서자 점심시간을 마친 간호사 셋이 커피를 든 채 수다를 떨다 제자리로 흩어진다.

안쪽 진료실에서 원장남자와 한 여자간호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둥그스레 한 여자의 몸체가 익숙하다.


"두 시 예약이신 조선희 씨죠? 주민등록증 보여주시고요. 여기 방문일지도 부탁드려요." 접수대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사무적으로 말한다.

"발치 문의 하셨구요. 바로 진료받으십니다."그녀가 얼굴을 들어 나를 확인하는 순간 진료실은 채비를 마친 모습이다.


"조선희 씨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진료실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간호사가  몸을 돌려 나긋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 낯이 익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 순간 발을 멈춘다. 그녀가 씩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출근길 그녀다.


동그랗게 말린 앞머리는 풀려 이마를 전부 가린 그녀의 얼굴이 낯설다. 내가 멈칫한 그 짧은 순간, 출근길 주고받은 눈빛과 미세한 표정의 변화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섞인다.


발치?짧은 말끝에 맞죠? 하는 눈길로 나의 시선을 쫒던 그녀에게 고갯짓으로 응수한다. 그녀가 무언가 궁리하는 표정으로 눈을 희번뜩 뜨며 오른손으로는 앉을자리를 가리킨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 앞으로  조심스럽게 지나가 안으로 들어선다.

주춤주춤 진료베드에 엉덩이를 올려놓는 나를 그녀가 빤히 바라본다.

" 자, 위쪽으로 조금 올라오시고요. 자, 조금 내려갑니다.

진료베드가 젖혀진다.


"발치를 물어보셨다던데 원장님 일단 점검하시고 결정될 거예요."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한 마디 더 한다.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조, 선, 희 씨"

초록색 얼굴 가리개를 들고 있는 그녀가 또박 또박 내이름을 말하고 눈을 맞추며 웃는다.

눈에는 힘을 준 채 입꼬리만 웃는 미소는 무섭다.


눈을 질끈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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