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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Aug 02. 2024

여행시작 50일 전

어떻게 되겠지 뭐

핀에어를 이용하여 항공편을 예약했다. 내가 타본 비행기 중 가장 좌석이 넓고 서비스가 좋았던 카타르 항공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역시 가격이 문제였다.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했기에 추가금액을 내고라도 좌석사전선택을 이용하고 싶었다. 나야 비행기 뒷 꽁지만 아니면 아무 곳이나 좋겠지만 멀리는 처음인 사촌언니를 위해 이코노미 중에서도 조금 더 나은 좌석을 선택해보고 싶어 여러 날 항공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아직 50일 가까이 남아있어 마음이 조급할 건 없다. 그러나 비상구 쪽이나 앞이 넓은 자리는 얼마 되지 않으니 맘을 놓을 수도 없었다. 날에 따라 좌석 추가금액이 들쭉 날쭉하니 이때다 싶은 날에 결재를 하리라 맘먹었었다. 

역시나 내가 맞았지! 오늘이다! 싶었다. 전날보다 10여만 원 저렴해진 맨 앞줄 자리에 맘을 굳히고 결재를 하려고 '다음으로'를 계속 클릭했다. 


카드 결제는 언제나 긴장감을 준다.

이런저런 정보를 외우고는 있지만 카드를 꼼꼼히 살펴가며 하나하나 입력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결재를 눌렀다.

그래도 언니에겐 창가자리가 좋을 테지! 착륙하는 시간까지 생각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리고서말이다. 


어라! 

화면에 

"부탁드려요!"라는 글씨와 함께 "결재를 위하여는 최대 두 가지 요구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글씨가 뜬 채 모든 게 정지되어 있다.

조금 기다리다 되돌아가 다시 맞닥뜨린 정겨운 두 마디, 부탁드려요. 뭘!!!! 대체 두 가지는 무엇인 것이냐! 

결국 나는 전원을 끄고 또 기계에 반감을 가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내가 늘 두려워하는 기계와의 대면, 그리고 불일치! 

'역시 나하곤 잘 안 맞아' 뭔가 잘못 누르고 말았을테지만 뭐! 하며 또 기계 탓을 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다시 항공사 홈페이지로 들어가 예약번호를 입력하고 좌석선택 서비스를 누르니 내 이름과 확정이란 글씨가 보인다. 결재를 하지 않아도 확정이라고 했었던가? 헛갈린다.

그리고 변경을 눌러 항공기편 단계를 살펴보니 금액이 뜨지 않은 채 이름은 좌석에 박혀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목소리로 모든 걸 확인하고 싶어 전화번호를 찾아보았다. 메모했다가 9시를 넘겨 해 보리라, 화면을 살펴보았다. 페이지 하단에 한국사무소 전화번호가 안 보여 오른쪽 하단의 챗봇을 클릭했다. (몇번의 클릭을 더 하면 한국사무소 전화번호가 보이지만 역시 9시를 넘겨야한다.) 질문을 짤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다. 사정을 자세히 없어 '좌석선택확정여부'라고 입력하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상담원이 대기 중입니다만 보이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 9시를 넘겨 다시 해보자! 마음을 비운다. 아마도 확정이라는 글씨덕인가보다.


십여 년 전에 익숙하지 않은 사이트를 통해 로마의 베드로성전 앞 대로의 오래된 호텔을 예약한 적이 있다. 집에 일이 생겨 여행을 포기해야 해서 항공료뿐 아니라 무료취소 불가능으로 예약한 호텔비를 날려야 했었다. 날짜 확정 없이 오픈한 4인 가족의 항공예약 변경은 큰 목돈이 들었다. 무료취소불가인 호텔 측에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증명하면 환불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다. 안돼도 사정이라도 해 볼 요량이었다. 호텔 측에 전화를 하니 이탈리아 남자의 영어는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었지만 예약사이트로 문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사이트에 문의하고자 전화를 걸어보았다. 바로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봉쥬ㅎ외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이트 본사가 스위스에 있고 프랑스어는 스위스의 공식언어 중 하나다. (프랑스 인접지역인 곳에서는 길에서도 프랑스어가 많이 들린다. 특히 제네바에서는 버스에서 프랑스어로 할머니에게 재차 말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내가 인사말을 입모양으로 말하니 작은 남자애가 봉쥬흐!를 소리내 실감한 적이 있다.)


반복하여 듣기를 여러 차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들린 소리! 짧은 인사말인 듯한 앞부분이 끝나면 이 자동화 녹음된 소리는 잠시 뜸을 두고 "엉 드 트호와!"로 이어진다. 마침 프랑스어 기초책을 구입하고 한 두 달 뒤였다. 

뭔가 번쩍!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자동안내 응답에는 1번을, 2번을! 하며 선택하는 안내가 따른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프랑스어 숫자 엉, 드. 트호와가 들린 것이다.

1번을 눌렀다. 영어 선택을 누른 것이다. 바로 전화를 받은 사람이 영어로 응대하기 시작했다. 버벅거리며 사정을 이야기하니 방법을 안내해 줬다. 아버지의 진단서를 보내면 되었던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인간승리라며 환불받은 금액의 숫자를 보고 나를 치켜세웠다.

정말 뿌듯했다. 


그 후로 나는 체육시간 양팔 벌려 뛰기를 할 때 영어, 중국어, 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의 숫자들 열개를 복창하게 했었다. 물론 학기 초 다섯 가지 언어소리를 종이에 프린트해 주고 수시로 나는 짧은 틈을 이용하여 -예를 들면 가방 싸며, 청소시작 시간 등-소리로 외우게 했다. 아이들은 작은 외국어 소리에 스스로 뿌듯해했다. 작은 경험이지만 다른 언어에 흥미를 가지게 하고 싶었고 의외로 작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우리말에 들어와 있는 여러 단어들, 앙팡이나 모나미, 뚜레쥬르 등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다소 불안한 일들에도 어떻게든 되리라 싶은 마음이 있다. 한국사무소 전화번호를 찾아 문의를 해보던 지 챗봇과 이야기를 이어가던 지말이다. 


그도 아니면 주어지는 자리에 구겨앉아 열 몇 시간을 가도 안될 것은 없다. 


(결국은 한국 사무소고객센터에 문의하여 결재를 끝냈다. 어제의 금액 그대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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