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치사랑

이름의 댓가

by 바카롱

예상했었다.

"괜히 왔어. 우리 집으로 가고 싶어! 엄마네 너무 건조한 거 같아. 불편해"

아기와 함께 온 가족이 이동한 당일, 그 많은 짐들을 나르고 정리면서 딸은 매우 호기로웠다. 넓어서 사람 사는 거 같네, 라든가 어른이 여럿이니 수고가 분산되어 할만할 것 같다는 말들은 몇시간만에 바뀌어 오밤중 우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또 예상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맘에 없는 소릴 했어. 힘들어서 그랬어. 엄마 고마워요."

역시 예상한 대로다.


딸은 심성이 착하다. 그런 모진 소리로 내 맘을 아프게 할 때는 '착한데 유하지는 않지. 니가! '나도 속말을 해본다.

꼬박 3일 밤, 손녀딸보다 내 딸의 잠투정이 더 심했고 나는 온몸이 아파왔다. 심지어 손목이 아픈 건 그렇다 치고 발목은 왜 아픈 건지!

"거봐 엄마. 그렇게 아프다니까!" 제 아픈 것을 흘려들은 내게 공감을 요구한다. 너무 오래전이라 그렇게 아프고 힘들게 키웠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더구나 예전의 나는 쌍둥이를 낳고도 한 달밖에 쉬지 (산후 휴가, 그걸 쉬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못했었다. 당시엔 두 달의 휴가가 주어졌지만 조산염려로 한 달을 미리 쉬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두통까지 오자, 이거 어쩌나 싶었다.


아기가 온 다음날 아기를 보기 위해 나의 또 다른 쌍둥이 딸의 내외가 방문했다. 그들의 점심과 간식-수없이 내리는 커피와 음료까지! 명절을 방불케 했다. 진이 빠졌다.

예전에 내가 쌍둥이를 낳았을 때 시댁식구들의 잦은 방문을 지금도 재차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3일째 되는 날 어머니는 증손녀를 보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셨다. 쌍둥이 다른 딸도 할머니와 조카를 보기 위해 또다시 발걸음 했다. 다시 북적인다.

아기위해 쓰라 예쁜 봉투를 내미신 엄마가 아기를 보고 감탄한 후 제일 먼저 눈길을 준 곳은 내 얼굴이다.


그 안쓰러워하는 눈길에 담긴 엄마의 마음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아이고! 저 마른 얼굴, 깊게 꺼진 눈 좀보게나. 그러게 뭐랬니? 셋이 다 오면 훨씬 더 힘들 텐데! 그냥 가는 편이, 그냥 가끔 가주는 편이 나았을 걸.'

(대중교통으로 시간 반거리의 딸네를 오가는 나를 두고도 안쓰러워하셨고 횟수를 줄이라 하신 걸 딸이 알면 서운하려나? 나의 엄마는 우리 딸들에겐 거의 신이시기에!)


내 딸이 칭얼거리던 한 밤중 생각했다. 내 옆에 누운 딸이 깰까 이불을 당기지 못한 채 어깨가 더 시려윘다. 딸의 투정과 제 아이 돌보느라 조심하는 그 모습을 반추하니 웃음이 슬며시 나며 떠오른 우리 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할머니가 된 댓가가 혹독한데 이것도 추억이 될 것이다.


사실 온라인 강의촬영을 앞두고도 돕겠다고 오가는 큰 딸의 방문, 착한 남편의 배려, 세심한 사위와 사돈댁의 음식 공수까지 모든게 순조롭다. 안 먹어도 배부른 나의 짧은 타령은 온 근육이 길들여지는 사이 사라질 것이다.

이제 단장은 고사하고 까치머리와 늘어진 옷차림으로도 사위 앞에 서는, 색다른 세상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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