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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May 18. 2024

아버지의 걱정

날 닮아 어쩌냐!

돌아가신 아버지는 나를 많이 이뻐하셨다. 남동생의 겅중겅중한 움직임보다 차분하고 공부를 더 잘하는 나를 대놓고 더 이뻐하셨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그건 깨물어서야 아는 걸 테고! 


친구들 모임에도 나만을 데리고 가시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일기엔 나를 빌어서 가지고 싶던 학용품을 얻으려고 했던 남동생의 에피소드가 적혀 있었다. 조금 더 큰 후에 어린 동생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짐작하며 슬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시며 진심을 담아 하신 몇 마디는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 네가 키가 훤칠하길 하냐? 인물이 좋길하냐? 음성이 좋길 하냐? 어쩌냐! 그 정도에 만족해야지." 이 세 마디와 진심 어린 걱정의 표정은 생생하건만 무슨 말끝에 이 세 마디를 붙이신 건지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마땅치 않은 짝을 수락해야만 하는 딸에게나 할 법한 이 세 마디는 혼인과는 상관없는 상황에서 하신 말씀이신 것만은 정확하다. 왜냐면 대학 시절에 들은 말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직업이나 진로를 걱정하는 말뒤에 따라 나왔던 것일까?


요즘 나는 이곳저곳에서 참! 예쁘다, 음성이 멋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눈 화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이라인을 그리면 효과가 배가 되는 앞이 긴 트인 눈을 타고 난 까닭이다. 

심지어 행인과 마주한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아이고! 인형같이 이쁘시네!"라는 윗 연배분들의 말씀을 듣기도 했다. 여러 모임에서는 대놓고 여러 차례 하시는 분도 계시다. "어쩜 그렇게 엣지가 있으셔요!"라든가 "무대에서 보면 샘만 보여요." 하는 당황스러운 말도 듣는다. 화장덕이라고 해도 '저도 화장은 했다' 답하신다.


한 번은 강당의 무대 쪽에 놓인 출석부에 표시를 하고 돌아서는데 모여 앉으신 대여섯 이상 많으신 선배들의 눈동자가 한 번에 꽂혀 그 미묘한? 시선을 부담스러워한 적도 있다.


이거 트루먼쇼인가? 다들 나를 놀리려 짠 것은 아닐까? 싶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음성은 어떤가? 내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하고 중저음이다.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대학교 때 소개팅에서 처음 들어봤다.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보다 듣기에 편안하고 성격이 좋아 보인다고 남자는 설명했다. 자신은 사람의 성격을 목소리로 가늠한다기에 하이톤의 가는 목소리를 타고난 여자는 억울하겠다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엔 목소리 톤이 색다르다는 말, 회의 중 다 서류에 코를 박고 있다가 내가 말을 시작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일제히 올리는 순간에 내가 갖은 목소리의 위력?을 느낀 적도 있다. 누군가는 박정자배우 같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차분하다고 표현했다. 


키는 누가 봐도 작으니 뭐 달리 기억되는 일이 없지만 10센티만 컸으면 다른 일을 했을 거란 말은 분명 위와 같은 경험인 게 틀림없다.


아버지는 왜 굳이 콕 짚어 그렇게 말씀하신 걸까? 


어머니께 요즘 나를 이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 이상하다며 이버지의 이 세 마디를 읊어대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 널 얼마나 이뻐했냐? 이쁜 딸이 본인 닮는 게 싫어서 그런 거지."


짐작은 되었지만 이제 명확하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걱정을 수반한다. 

닮을까 봐 걱정 안 닮을까 봐 걱정!


네가 키가 훤칠하길 하냐?

인물이 좋길하냐?

음성이 좋길하냐?

그중에 제일 큰 걱정은 꾀꼬리 같지 않은 여자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어젯밤 꿈속에 아버지를 만났다. 이렇게 하면 되나? 물으시며 주먹만 한 꽃들을 큰 화분에 옮겨심겠다고 하셨다. 꿈속에서도 키가 고만고만한 나와 아버지가 마주 보며 웃었다. 키가 비숫하니 맞들기 좋다는 의미의 웃음을 주고받았다. 웃으며 잠이 깼다.


커튼을 열어젖히며 다시 한번 세 마디가 반추되었다.

아버지, 더는 걱정하지 마세요.  앞이 트인 눈을 물려주신 것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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