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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May 13. 2024

책상 밖 공부  

벌써  두 달째 책 한 권은 고사하고 글 한 줄도 온전히 읽지 않았다. 하물며 글쓰기야! 마음이 아팠던 지난겨울을 빌미로 글 한 줄 쓰지 않은 채 한 두 달이 훌쩍 지나고 있었지만 조바심도 자책감도 생기지 않았다. 겨울을 보내 마음이 견딜만하자 몸에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3월 내내 등이며 팔에 커다란 통증이 생겨 아무것도 없었다. 통증은 마음의 우울감도 동반했다. 신경주사와 물리치료를 받으며 단 번에 나아지기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 스스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폼볼을 가지고 굳어진 등 근육을 마사지하며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몸의 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피할 없는 노화의 징후는 장수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도 불러일으켰다. 장수하시는 어른들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뎌내는지가 느껴졌다.

길에서 무수히 만나는 어른들의 휘어진 등과 느린 걸음걸이에 마음이 쓰였다.

한 달간의 통증이 없어지자 별일 없는 하루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깊이 느끼게 되었다.


4월 초, 힘들게 얻은 텃밭에 가기 위해 나트 막 한 동산을 오르고 내렸다. 텃밭 주변 잘 만들어진 공원을 걷고 그네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가져간 샌드위치나 커피를 즐기며 구름이 오가는 하늘을 맘껏 보았다.

아름다운 계절과 함께 이전의 몸 상태가 되니 행복감이 배가 되었다.

이른 새벽 창을 열고 신선한 공기에 아침을 맞고, 암막 커튼을 내려 빛을 차단하고 잠드는 하루가 너무나 소중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매일 밥상 위에 상추를 올리고 빨간 열무(적환무)로 열무김치를 만들었다. 열무를 걷어낸 공간에 토마토 모종을 심고 지지대를 꽂아 모종이 타고 오르도록 끈을 묶어주었다.


오늘은 상추밑동을 깨끗하게 정리하라던가, 토마토모종은 너무 많다는 이웃 도시 농부의 조언과 경험을 듣고 내려왔다. "지금은 부지런히 채소를 드셔야 해. 어느 순간 장마가 오면 흙이 쓸려간다고!" 끝없는 조언에도 미소가 차오른다.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허리를 굽혀 이미 밭의 상추 둥을 정리하시는 모습에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다.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일찌감치 같은 통증으로 병원을 수없이 다녔던 친구의 조언은 큰 공부가 되었다. "마음을 비워. 걔 다시 올지도 몰라, 완전히 낫지도 않아. 이제 우리 그럴 나이야.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같이 가는 수밖에!" 통증도 친구로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경험자의 지혜가 우울한 조바심을 거둬내주고 있었다.


책상 위 공부만 공부가 아니다.

아무렴 어떠랴! 내일 새벽에도 커튼을 열고 아침 해를 맞으며 여명과 함께 커피를 내리고 행복해할 거다.


이제 다시 무엇이라도 해야겠지만 지금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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