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켜켜이 쌓인다는 건
지나온 날들이 차곡차곡 내려앉아 단단한 층을 이룰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방과 같다.
분명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손에 꼭 쥐고 절대 놓치지 않겠다 다짐했던 맑은 풍경들.
하지만 갈수록 켜켜이 쌓이는 시간의 무게에 눌려,
정작 소중했던 것들은 갈수록 희미하고 뿌옇게 변해간다.
그러다 가끔, 짐을 정리하다 하나둘 튀어나오는
기억들 덕에 웃다가도 이내 이렇게 희미해지는 것이 무서워진다.
나의 전부였던 순간이 고작 이 정도의 농도로 남아있다는 것이.
그에 반해 지워버리고 싶은
서글픔이나 사소한 미련 같은 것들은
먼지처럼 내려앉아 지워지지도 않은 채 두텁게 층을 이룬다.
버리고 싶은 것일수록 무게감이 생겨 마음의 바닥을 차지한다.
이제는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넘치는 기억들이 마음의 천장까지 차올라 숨을 쉴 때마다
시간의 냄새가 훅 끼쳐온다.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무엇을 내다 버려야 할지 몰라
그저 쌓여가는 시간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무거워지고만 있다는 건 아닌 지 가끔은 겁이 난다.
기억이 흐려지는 건 망각의 축복이라지만,
왜 잊고 싶은 것들은 더 선명하게 겹을 이루고
붙잡고 싶은 것들만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