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원 수업을 마치며
1단원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그때가 떠올랐다.
생각지 못한 삶의 불행이 불쑥 찾아와 내 세계를 다 헤집어놓고 간 때가 있었다.
마음을 겨우 다잡은 나는 새로운 일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둘째를 임신 중인 아줌마, 몇 달 뒤면 육아휴직을 하고 떠날 나를 받아줄 회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재택근무 자리도 찾아보던 나는 제품 리뷰를 쓰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담당자와 세 마디 나눠보니 사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해당 사례를 검색해 보니 사기가 맞았다. 늦지 않게 그 사실을 알아차려 다행이었지만 힘겹게 붙잡고 있던 정신줄이 후드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이 아닌데, 그 당시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고, 비참했다.
"나는 이렇게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나를 파고들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때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된 책이 있었다. ‘잠수종과 나비’였다. 책머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잠수종이 한결 더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길에 나선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시간 속으로, 혹은 공간을 넘나들며 날아다닐 수도 있다. 불의 나라를 방문하기도 하고, 마다스 왕의 황금 궁전을 거닐 수도 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은 눈에 보이며, 대부분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살지만 마음을 사용하는 법은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주인공은 마음 사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책 곳곳에 마음으로 넘나들었던 과거와 미래의 여행기를 위트 있게 적어두었다.
“위와 연결된 존 데를 통해 투여되는 두세 병 분량의 갈색 물질이 나의 하루분 필요열량을 충당해 준다. 다만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맛과 냄새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기억이야말로 감각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다. 먹고 남은 음식만을 가지고도 새롭게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내 기억 속에서는 아무 때고 식탁에 앉을 수 있으며, 까다로운 절차도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간다 하더라도 예약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하는 경우에는 백발백중 대성공이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내용이다.
병실에 누워 그는 자신이 먹어봤던 음식을 마음으로 마음껏 먹고 음미하는 이야기를 아주 실감 나고, 자세하게 써두었다. 읽고 있는 사람이 먹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뵌 날, 나는 아버지의 수염을 면도해 드렸다.
-중략-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 드림으로써 나를 낳아 주신 분에 대한 이발사로서의 서비스를 모두 마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작별인사를 한다. 어쩐 일인지 이날만큼은 아버지께서 책상 속에 자신의 마지막 유언을 적어 놓으신 편지가 정리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나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는 나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베르크의 휴양지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흔두 살이라는 고령 때문에 아버지의 아파트 계단도 못 내려오실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둘 다 로크드 인 신드롬 환자인 셈이다. 나는 마비된 내 몸속에 갇혔고, 아버지는 4층 계단 때문에 발목이 묶이셨다.”
그리고 그는 이내 아버지의 마음으로도 여행을 떠났다. 마지막에 아버지를 만났던 날을 떠올리는 걸 시작으로 (발췌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사고가 난 후에도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각하고, 그가 보내온 옛날 가족사진에 담긴 사랑을 음미한다.
이외에도 그는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고, 꿈을 꾸었다.
눈꺼풀밖에 못 움직이는 그였지만, 에세이를 비롯해 대하소설 등 글을 써보고 싶다는 내용을 이곳저곳에 비친다. 실제로 그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 머릿속에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열 번씩이나 되뇌어 보면서 단어를 빼기도, 형용사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의 원고를 한 문장씩 암기하였고, 자신의 눈짓을 알파벳으로 바꾸어줄 치료사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아이들 때문에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징징대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 또한 ‘로크드 인 신드롬’ 환자였다는 걸 깨달았다. ‘할 수 없다’ ‘절망이야’라는 그 생각에 갇혀있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일까 ‘잠수종’이라는 단어, ‘나비’라는 단어 하나하나가 내게 아주 오래 머물렀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는 '공부에 집중해야 하니까'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는 '일을 해야 하니까 바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마음껏 음미할 틈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를 돌봐야 해서 꿈을 찾거나 새로운 걸 도전할 기회가 영영 사라졌다고 여겼다.
내가 살아가는 내내 그 누구도 내 손발을 묶은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틀을 만들어 나를 가두었던 건 아닐까.
1단원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수없이 했던 말로 이 글을 마친다.
우리는 마음으로 과거나 미래에도 갈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에도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랑을 느끼며 잠시 쉬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꿈을 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