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원 수업을 마치며
2단원의 주제는 ‘생각’이다.
생각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유독 나의 생각 ‘쓰기’ 활동이 많은 단원이다.
수업 중 최근에 내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었던 생각은 무엇인지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학생들이 어떤 내용을 적고 있는지 살펴보던 중 한 남학생이 적은 것이 눈에 띄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 걸까?’ ‘행복이 뭐지?’
초보 강사였던 나는 그 질문을 보고 당황했다.
어떤 반응을 해야 적절할지 떠오르질 않았다.
그저 “선생님도 학창 시절에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라며 꼭 필요한 질문이라고 웃으며 넘어갔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상담사가 아닌 강사이기에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거나 개인적으로 답을 할 권한(?)은 없다. 다만, 그래도 내가 만난 학생들이 하는 고민을 나도 충분히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나의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10대의 나는 한마디로 자발적 외톨이었다. 태어난 후로 쭉 가난했던 집안 형편, 특별할 것 없는 외모, 내성적인 성격... 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부끄럽고 싫었다. 누군가 나를 짓밟을까 봐 두려워하며 살기 위해서, 공부에 몰입했다. 그때 겨우 10대였는데 나는 모든 걸 안다고 자만했다. 나름의 경험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가지 생각이 단단히 심겨있었다.
‘세상은 결국, 갖춘 사람들에게 친절해. 그런 사람만을 선호해. 그게 세상의 규칙이고 불변의 진리야.’ 당시 내 마음은 죽은 것처럼 공허한데, 성적만 잘 나오면 사람들은 나를 모범적이고 괜찮은 사람으로 여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내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덩치를 키워갔다. 나는 모든 것에 심드렁하고 회의적이었다. 그 당시에 흔히 경험한다는 순수한 우정도 믿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는데 나는 꿈을 고민해 보는 시간도 사치인 것처럼 느껴졌다. 성적이 툭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를 지키던 얄팍한 방어체계마저 모두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의 씨앗은 나의 10대 전반을 장악했다.
그런 내 삶에 반전은 20살이 된 이후에 일어났다.
10대에 내가 붙잡았던 생각이 나를 지탱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한계를 느껴갈 즈음이었다. 나는 휴학을 하고 1년간 해외 봉사를 떠났다. 거기서 아주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태국은 더운 날씨만 빼면 살기 좋은 나라였고, 봉사단 크기도 제법 컸다. 나의 업무는 홍보를 돕고 공연을 함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곳에 살면서 한 가지는 명백하게 느꼈다.
내가 아는 세상은 너무 좁았구나
세상에는 내가 만나보지 못한 문화, 인종, 자연환경, 삶의 모습이 너무 많았다. 그곳엔 내가 어떤 걸 갖춘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좋은 인연으로 만나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즐거웠고, 동고동락하며 소중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치앙마이에 청소년 행사를 하러 갔을 때였다.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는데, 갑자기 나만 빼고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혼자 남아 연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생일 케이크를 들고 친구들이 나타났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면서. 친구들과 함께한 내 생의 첫 생일 파티였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니 난 도대체 어떻게 산 거야?’ ‘나도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왜 내가 갖춰져야지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촛불을 끄는 와중에도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신념이 틀려서 너무 다행이었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 때 느꼈던 그 행복의 맛은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은 감정이 내 삶의 방향을 바꿔주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갈 방법만 생각하던 나였는데, ‘내 마음이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어떤 걸 할 때 행복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단번에 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덕분에 내 삶이 이만큼 풍요로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생각에는 반드시 근거가 있다.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가설이 세워지고, 실제 경험들이 몇 차례 겹치면 우리는 그걸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사실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생각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아 나를 불행하게 이끌어 간다면 그 생각이 더 커지기 전에 버려야 한다. 내 생각이라고 다 나를 위하는 것도 아니며, 그 모든 생각을 내가 다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이 생각을 버려야 할지 내 마음속에 키워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가만히 지켜보자. 그리고 나와 생각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그렇게 조금씩 내 마음 밭을 가꿔나가 보는 것이다.
아픈 청소년기가 지나 어른이 된다고 넘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처음인 것들은 너무나 많고, 넘어져 다치는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내가 청소년기보다 어른이 된 지금이 더 좋은 이유는 이 두 가지 생각이 내 마음밭에 심겼기 때문이다.
A. 내가 아는 것은 일부일 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더 많구나
B. 주위를 잘 살펴보면 손을 뻗었을 때 잡아주려는 사람이 있구나
'오늘 내 마음밭에는 어떤 씨앗이 자라나고 있는가?'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