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아.. 왜 안 되냐고? ..”
등을 돌리고 앉아 꼼지락꼼지락 뭔가를 만지작 거리더니 이내 내쪽으로 몸을 돌려 짜증을 쏟아내는 아이.
나의 평온은 오늘도 이렇게 예고 없이 깨져 버린다. 그래도 오늘은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라며 엄마인 죄를 추궁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올해로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아이는 혼자서 뭔가 ’특별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템’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이 아이가 만든 물건들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장인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큰 매력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초허접 미‘라 부른다. 부서진 지우개를 실로 엮어서 재탄생시킨 지우개, 휴지심으로 만든 필통(도대체 필통은 왜 그렇게 많은 거니), 멀쩡한 수첩을 놔두고 a4를 잘라 엮어 만든 미니수첩.. 하나 같이 마감이 엉성하다는 게 이 수제 작품들의 특징이다.
오늘도 또 하나의 희귀템이 나오겠거니 생각하며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었는데 뭔가가 뜻대로 안 되는지 아이는 양쪽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끙끙거리며 씨름을 할 기세다.
”뭐가 잘 안돼?“
”… 휴… 에이… 아…“
”뭔데? 가져와 봐“
” 이거 내가 아무리 힘껏 잡아당겨도 안 풀려.. 아까보다 더 심하게 엉켜버렸어.“
쓰다 남은 털실 뭉치를 풀어서 뭔가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던 아이의 계획은 대책 없이 뭉쳐버린 털실처럼 엉망이 된 모양이었다. 실을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더 단단히 엉켜버리니 애를 쓰면 쓸수록 아이의 마음은 더 조여 오는 것이었다.
”엉킨 걸 풀려면 힘을 빼야 해“
”힘을 왜 빼, 더 세게 잡아당겨야 풀리는 거 아니야?“
실타래의 한쪽 끝을 느슨하게 만들자 아이는 다시 달려들어 삐져나온 실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실은 조금 풀리는가 싶더니 아까보다 더 단단히 엉키는 것이었다.
“아..뭐야.. 또 엉키네.. 이것들이 나를 골탕먹이기로 작정했나..!”
“얘들이 뭐 하러 너를 약 올리겠니, 매듭은 세게 잡아당길수록 더 단단해져.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힘을 빼야 하다고”
시간이 더디 걸렸지만 하나하나 살살 달래주듯 실 사이사이의 간격을 벌리고 공간을 만들어주자 엉성해진 실타래가 한결 가벼워졌다. 실이 지나간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조심조심 되돌아가니 금세 실이 풀리는 것이었다.
“뭐야, 엄마가 하니까 왜 되는 거야?”
“엄마는 힘을 뺐고 너는 힘을 줬으니 그렇지“
아이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며 ‘힘을 쓸 때보다 뺄 때’를 잘 알아야 인생살이가 좀더 수월해지겠구나 싶은 생각을 한다.
엄마로서 나는 눈앞에 주어진 소소한 일들에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어깨를 잔뜩 구부리고 온 힘을 다해 몰두하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그래서 점점 더 풀리지 않는 숙제들이 쌓여가는 느낌은 아니었는지.
내 인생에, 그리고 당신의 인생에 정말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은 과제가 쌓여 있다면, 잠깐 쉼표를 찍고 한 바퀴 쉬엄쉬엄 돌아 힘을 빼고 멀찌감치 들어다 보기를…
그래도 해결이 안 된다면 그건 신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