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야외활동을 썩 즐기는 성향이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은 바깥은 좋아하나 움직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다른 한 명은 바깥보다 집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하겠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가족에게 차로 30분 이상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나들이나 여행을 나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담이 따른다.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두 사람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두 아이들에게 집 밖은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아파트 단지를 거닐 때면 누군가 창 밖으로 무언가를 던질까 겁이 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벼락 맞을까 겁나며, 햇볕 쨍쨍한 날에는 일사병으로 쓰러질까 겁이 난단다. 다리는 무너질까 무섭고, 오래된 건물은 붕괴될까 두렵다.
이런 성향이다 보니 자차로 어딘가, 우리 기준으로 장거리라 여겨지는 곳으로 나들이라도 갈라치면, 이쪽저쪽에서 징징거리는 소리가 앞선다. 부모 된 도리로 ’어른다움‘으로 위장하며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사실 두려운 건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남편보다는 내쪽이 더 그럴 것이다. 아이들이 느끼는 똑같은 불안감을 나도 오랜 세월 느끼며 살아왔기에 이해 못 할 일도 아니건만 괜한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타박한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너희는 집에만 있을 거야? 집은 안 무너지니?”
“아니, 아빠 차를 타고 어디 가는 게 무섭다는 거야, 차가 전복이라도 되면 어떡해”
두려움과 걱정은 그대로 유전이 되는 걸까?
“그리고 차 타면 멀미가 난다고. 토할 거 같단 말이야 “
“한 8년 전에 한 번 토한 거 같은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안 했잖아. 운전은 아빠가 조심히 할 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빈속에는 멀미가 나니 음식을 조금만 먹고 가면 괜찮을 거고“
”그래도 난다고.. 그래도.. 난 차 타는 상상만 해도 멀미가 나“
처음에는 차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서 몇 시간을 꼼짝 않고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불편감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또 연식이 꽤 된 suv 차라서 냄새도 나고 멀미가 나는 것이고. 그러나 멀미도 전염이 되는지, 언젠가부터 멀미를 하지 않던 둘째 아이까지 같이 합세해 멀미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멀미 난다고.. 걸어서 가면 안돼?“
차로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를 걸어서?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제공해 주려고 몰두했던 지난 14년이 쓸모없는, 오히려 이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시간이었던 걸까? 엄마가 주양육자로서 육아에 매진하면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된다는 말에 내 커리어를 접고 선택한 삶이었는데, 되레 문제를 회피하는 겁쟁이들로 키워낸 건가? 14년 육아맘 인생이 이렇게 무용지물이 되는가 싶어 허탈했다.
깊은 실망감에 아무 말 못하고 있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한 마디 한다.
”멀미가 나는 거 같으면 창밖으로 멀리 내다봐 “
”멀리 보면 멀미 안 나“
’멀리 보면 멀미가 안 난다‘
남편의 말을 되뇌어 본다.
어쩌면 지금 내 인생도 멀미 나는 차 안 같은지 모르겠다. 속이 울렁거리고 두려움이 가득하고 마음 한편은 답답하다. 애를 쓴다고 썼는데 아이들은 생각처럼 잘 자라는 거 같지 않고, 난 매일 인생 울렁증으로 투덜대고 있지 않은가.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는 차를 더 이상 안 타 거나 중도 하차를 선택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창문을 열거나 잠을 자며 속을 달래고 그 상황에 익숙해지려 애쓰겠지.
나는 이번에 멀리 보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금의 내가 겪는 인생 울렁증은 하루하루 아이들의 모습과 행동에 반응하는 전형적인 근시안자의 어지럼증 같으니까.
인생은 길고 갈 길은 멀다. 저 아이들의 인생이야말로 그러할 텐데 엄마인 내가 앞장서서 그 아이들에게 눈앞의 것을 보고 미리 두려워하라고 경고해 왔던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멀리 보라고 외치기 전에 나부터 멀리 봐야겠다. 멀리 보자, 멀리서 보면 낡은 골목길은 정겨운 풍경이 되고, 복잡한 도심은 화려한 야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