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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Aug 30. 2021

워킹맘의 3가지 전쟁

육아 휴직 중 비혼인 선배랑 연락할 일이 있었다. 회사 일에 본사 업무에, 매일같이 술자리에 일당백이라 한결같이 존경스러운 선배다. 선배한테 '너무 부럽다. 나는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넋두리를 하니, 선배가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ㅇㅇ아. 나는 워킹맘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러워.'


눈을 잠 감지도 못하지만 여하튼 떠서 하는 일이라곤 육아와 살림밖에 없던 휴직 시절엔 그냥 아득했나 보다. 이른 아침의 커피와 점심 식사 후 노닥거림. 퇴근 직전 눈치 전쟁이 그리웠을 뿐이다. 그래서 워킹맘 라이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생각은 못한 채 간절하게 복직만을 바랐다.


복직 후 10개월. 나는 스스로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워킹맘이 됐고 식상한 말로 매일이 전쟁이다.


워킹맘의 전쟁은 크게 3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1. 출근 전쟁



온 우주가 나를 도와(?) 복직 3주 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따금씩 보통의 직장인처럼 8시까지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데 이때가 아주 고역이다. 복직 초기에 내가 살던 곳은 회사에서 대중교통으로 무려 1시간 30분 떨어진 신도시. 지금이야 이사를 해서 운전해서 30분이면 가지만, 당시에 나는 출근을 위해 5시 30분에 일어났고 잠자는 16개월 아이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회사로 향했다. 안방에 달린 CCTV를 보면 아이와 남편은 쿨쿨.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잠자는 모습이 애틋하지만 또 안쓰럽다. 곧 펼쳐질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8시쯤 일어난 아이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도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광분한다. 아이를 달래는 데에는 6척 장신인 남편도 속수무책이다. 쩔쩔매다가 겨우겨우 울음을 달래고 어린이집 보낼 준비를 한다. CCTV에 달린 소리라도 켜면 그날 오전 업무는 영 쉽지 않다. "엄마 엄마"하고 울어대는 소리가 하루 종일 귀에서 울려대기 때문이다.


아이 상태도 그렇거니와 엄마의 체력도 엉망이다. 보통의 여성 직장인들이 육아휴직 후 복직하는 시기는 여전히 아이가 새벽에 엄마를 찾는 시기다. 아이를 재우고 내 시간 좀 갖고 잠들까 싶었는데 아이는 새벽에 깨서 울기도 하고 그냥 부스럭대기도 한다. 엄마는 아이가 곤히 잘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나처럼 예민한 엄마는 3시간 연속 자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게다가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 하니 실제 수면 시간은 총 5시간도 될까말까다.


그나마 우리집은 부부가 출근을 유동적으로   있는 집이라 다행이지,   꼬박 정시 출근해야 하는 부부는 아침이 정말 지옥이다. 어린아이들은 그래도   있는 만큼 재워야 하는데 그게 출근시간이랑 맞을 리가 없다. 부부 출근 시간까지 등원 도우미 시터님이 오지 않으면 절망적이다. 소득이 적든 근로 의욕이 적은 쪽은 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예 아이와 같이 출근할 수 있는 직장 어린이집은 바늘귀 들어가는 낙타 꼴인데 이것도 할 말이 많다. 근로시간을 조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직장 어린이집에 데리고가야하는 모부 중 한쪽은 새벽녘부터 아이를 흔들어 깨운다. 자차 운전하면 그나마 차에서 재우는데 간혹 대중교통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오전 7시 40분, 절대 이 나이대 아이가 일어나기 힘든 시간에 낑낑대며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아버님을 며칠 연속 목격한 적이 있는데 아이의 다크서클이 30대 중반인 나만큼 내려와 있는 듯한 건 그저 기분 탓이겠지.


2. 등원 전쟁


출근 전쟁의 연장선에는 등원 전쟁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는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가기 싫어한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온전한 관심도 받지 못하고, 이른바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 보육기관이다. 만 1세쯤엔 아무것도 모르고 쫓아나 섰다가 문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고, 만 2-3세, 우리 나이로 3~5세에는 자기 의지가 확실해져서 가기 싫은 이유를 수백 가지쯤 댄다. 그럼 그 이유에 반박을 하든 설득을 하든 강행을 하든 등원 담당자는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은 거래처 설득보다도 고되다.


"이제 어린이집 가자."


"이거 한 번만 하고 갈래."


"한번 했으니까 가자."


"딱 한 번만 더 하고 갈래."


"딱 한 번만 더 했으니까 가자. 두 번 했어."


"이제 이거 할래(다른 장난감)."


"친구들이랑 선생님들이 ㅇㅇ이 기다리고 있대. 같이 놀고 싶고 보고 싶대."


"난 안 보고 싶어. 안 갈래."


이런 대화가 길게는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대충 9시 반 정도까지?


겨우 설득해서 문 앞에 데려다 놓으면 다시 또 "가기 싫어" 시작이다. 절대 조바심이나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엄마의 신경질과 불안정한 모습은 그대로 아이에게 투영된다. 마스크를 내리고(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니까) 인자한 표정으로 차분히 위의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다 왔네. 이제 갈까?"


"안 갈래."


"엄마가 꼭 안아주고 비행기 태워줄게. 다 하고 가자."


일단은 좋아한다. 하지만 약속한 비행기까지 다하면 다시 울고불고 난리다.


한동안은 이런 패턴에 아이에게도 미안하고 나 역시도 좌절했지만 최근 들어 요령이 생겼다.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인데, 우리 아이의 경우 독립심과 자기 효능감이 매우 중요한 아이라서 꽤나 잘 먹힌다.


바로 기관에서 해야 할 일 정해주기다. 우리 아이의 특성상 친구들을 챙겨주거나 친구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해냄으로써 의기양양해지는 타입이라 그렇다.


하루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장난감을 갖고 간다길래 등원 직전에 이런 임무를 줬다.


"ㅇㅇ아. 오늘 친구들한테 '가르쳐줄 게' 있어."


"응?"


"바로 이 사람(베토벤)이야. 이 사람이 누구지?"


"귀 없는 사람. 베토벤."


"맞아. 오늘 친구들한테 '이 사람은 귀가 없는 사람이야. 이름은 베토벤이야'하고 가르쳐주자."


집에서부터 가지 않겠다고 난리 치던 아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신이 친구들한테 무언가를 가르쳐줘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다. 아이는 순조롭게 등원했고 가서도 꽤 잘 놀았다고 한다. 보통 개인 장난감은 같이 갖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사전에 보육기관 선생님과 조율을 해놓으면 된다.



3. '워킹맘' 프레임과의 전쟁


개인적으로 늘 좌절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워킹맘은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일도 제대로 못하고 육아도 뒷전, 살림은 개판이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죽어라 노력해도 모든 분야에서 B+ 이상을 받기가 여간 쉽지 않다.


워킹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애로사항은 기관에서 워킹맘이라고 눈치를 주는 부분이다. 일찍 맡기고 늦게 데려가니 기관 입장에선 성가실 수 있다. 물론 그런 태도를 내비치면 안 되고 그런 곳도 많지는 않겠지만, 입소 상담을 할 때 은근히 이런 말을 흘리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믿고 맡기세요!"라면서 "보통 다른 집은 하원 시터 써서 4시엔 데리고 가시더라고요."


(뭐 어쩌라는 건지.)


기관을 보내고 나면 그다음부턴 아이의 모든 문제가 엄마가 워킹맘이라서 그렇다는 이유로 귀결된다.


아이 정서가 불안정하면, 엄마와의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아이가 버릇없는 건 엄마가 오냐오냐해서. 아이가 폭력성을 보이는 건 엄마가 부재해서. 모든 게 주양육자인 엄마 '탓'이다.


사실 이게 엄마가 된 이후로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그 아이의 세계이자 신에 버금가는 존재다. 주양육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다니 속된 말로 '정색하기도' 어렵다. 난 자주 하지만.


이런 엄마 자질 부족 때문에 급기야는 상담센터까지 찾게 됐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내가 좀 더 적극적이고 즐겁게 육아에 참여해 건강한 애착을 형성해야 아이 정서 발달에도 좋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담기관은 특정 문제가 있어서 찾는 곳도 아니고 초보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 좀 더 개선된 양육 태도를 갖게끔 도와준다. 많은 부모들이 오은영 박사님한테 10분에 9만원씩 주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다음으로 프레임을 세게 씌우는 곳은 회사.


얼마 전 상반기 인사고과에서 태어나서 학부 때도 받아본 적도 없는 C를 받았다. 심각한 충격에 부서장부터 임원까지 면담 신청을 했고 '나는 그럴만한 퍼포먼스를 내지 않았다'는 것을 적극 어필했다. '재택 하느라 집에서 애보니'부터, 그들의 입장은 하나같이 유사했다.


'애 키우기 힘들잖아. 다 이해해. C 좀 받을 수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C를 받을 만큼 일을 안 하지 않았다니까요. 더 설명하자면 구차해지니 일단 나는 아니라는 입장만 재차 밝혀둔다.


어린아이를 둔 '여자' 직원이 되는 순간 회사는 당신을 곱게 보지 않는다. 약간의 구멍만 나도 '애보느라 그렇지', 미혼이나 아이가 없을 때처럼 퍼포먼스를 내지 못하면 '애 생기더니 꺾였네'라든가. 그것도 아이를 두고 있는 상사들이 말하니 우리나라 직장 문화도 멀었다 싶을 뿐이다.


고과 한두 번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승진까지 물 먹으면 근로 의욕은 역으로 발산한다.


출산 휴가 및 육아휴직을 앞둔 지인 한 명이 최근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다. 본부에서 딱 한 명만 승진할 수 있는데 연말 출산이라는 이유로 후배를 먼저 승진시켰다고 한다.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넌 휴직하니까'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담 끝에 회사 측에서 결국 하고 싶던 말은 '휴직자를 승진시키면 다른 직원들의 사기가 위축된다'였다고 한다.


다른 지인 한 명은 두 번의 육아휴직 끝에 인사고과 C만 2번, 승진도 2년이나 누락됐다. 다행히 그 사이에 승진 대상자는 없어서 후배가 선배를 앞지르는 비자발적 하극상은 없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지인은 담담하게 둘째를 임신한 나에게 말했다. '그냥 길게 봐. 그냥 다니면 되는 거야.'


승진 1-2년 빠르다 한들, 인생에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무사히 잘 다니고 있으면 그걸로 된 게 아니냐고.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긴 인생에 승진 한두해 빠른 것은 큰 의미도 없고 사실 나의 승진을 누락한 그들보다 내가 더 회사에 오래 다닐 것이다. 회사가 맘에 들지 않아 이직을 하려고 한다면 더욱 신경 쓸 것 없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성적증명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이 만약 '원래 특출 난 직원인데 육아에 에너지를 나누는 상황'이면 더욱 걱정할 것 없다. 회사가 당신을 뭐라고 평가하든 당신의 캐파는 그대로고 다만 그 총량을 나눠 쓰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아이가 당신 손을 떠나서도 안전하게 지낼 시기가 온다면, 혹은 지금이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무한대로 발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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