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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May 16. 2022

생산성 중독자의 육아휴직

아기를 키우는 기쁨은 절대적이다. 이전까지 알 수 없던 환희로 마음이 몽글해진다. 이 작은 천사는 울음마저도 깜찍하기 짝이 없다. 아기가 그런 존재라면 분명 육아는 만족과 충만함의 연속이어야 하는데 왜 '젖소가 밭을 간다'는 자조가 나올까. 20년 이상을 나만을 위해 살던 인생인데 갑자기 아이한테 헌납하려니 마음 한 켠으로 '뭘 좀 더 해야 하지 않나'하는 불안이 남는다. 일 욕심 많고 계속해서 커리어적인 이상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첫째 아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내 이력서엔 3줄이 더 생겼다. 하나는 미국 한 주립대학교의 테솔(TESOL) 자격증. 또 하나는 글로벌 기업에서 진행한 육아휴직자 대상 재교육 프로그램. 마지막으로 미디어 스타트업 외부 필진. 육아는 24시간 노동이지만 숨 쉬고 밥 먹을 시간은 누구나 있지 않겠는가. 간혹 나 같은 생산성 중독자들은 아이만 보는 시간이 아깝다며 넋두리를 하기도 한다. 이런 안타까운 인생을 자처하는 이들은 초를 쪼개서라도 작은 성취를 이뤄야 안도감을 느낀다. (도파민 중독?) 이 글은 이들 중생을 위한 애 둘 워킹맘의 작은 팁이다.


1. 이제는 뉴노멀인 '비대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히려 커리어 개발하기가 쉬워졌다고 하면 어폐일까. 지난 2년간 온라인 강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육아휴직자들의 커리어 재개발도 이전보다 용이해졌다.


내가 육아휴직을 시작했던 시기는 아직 코로나 이전이었지만 그때도 온라인 강의 플랫폼은 다양하게 존재했다. 온라인 강의야 말로 아이 보면서 머리에 지식 하나 더 넣기에 완벽한 시스템 아닌가. 국내에도 다양한 온라인 강의가 있지만, 이왕 온라인으로 듣는 거 해외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려보자. 코세라(coursera)는 글로벌 온라인 공개수업 플랫폼(MOOC)으로 2012년 스탠퍼드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가 만들었다. 제공되는 수업도 데이터, 블록체인 등 IT 관련 강좌를 비롯해 영어 글쓰기, 마케팅, 비즈니스 학사는 물론 석사 학위까지 취득이 가능하다.



코세라에서 등록한 수업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테솔 자격증 프로그램이었다. 테솔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일종의 교원 자격증이다. 어느 정도 영어 능력을 증빙하며 제3 국에서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고도 한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후 재취업을 할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자격증 또는 학위 프로그램은 수업비를 내야 한다. 금액은 합리적인 수준이다. 애리조나주립대 테솔 수업의 경우 1개월에 약 $49로 총 10개 강좌를 수강해야 한다. 각각의 코스는 권장 수강 시간이 있으며 총 예상 기간은 약 10개월이다. 즉, 단기간에 많이 들으면 수강료를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판단에 나의 경우는 4개월 만에 코스를 마쳤으며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에 한화로 30만 원도 들지 않았다.


학위를 제공하는 학교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를 비롯해 콜로라도대학, 미시간대학, 일리노이대학, 영국의 런던대와 임페리얼 콜리지, 프랑스의 HEC 파리 등이 대표적이며, 인도나 남미 대학들까지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학위 또는 자격증 프로그램의 경우 계속해서 과제도 제출해야 한다. 그냥 동영상 강의를 틀어놓고 멍 때려서는 안 된다. 퀴즈도 있으며 종합 시험도 있다. 돈 내고 따는 학위는 절대 아니다. 아기를 보면서 강좌를 틀어놓고 중요한 부분은 집중해서 듣고 핸드폰으로 필기해놨으며 동영상 촬영 과제 등은 아이 수면시간을 활용해 해결했다.  


최근에는 헤이조이스, 패스트캠퍼스 등의 다양한 온라인 커리어 개발 플랫폼들이 생겨나고 있다. 패스트캠퍼스는 인터넷 강의를 보다 짧게 쪼개서 제공해 이용자들의 집중도를 높인다. 예컨대 한 강의당 짧게는 3분, 길게는 10~2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아이를 돌보면서 공부하기에 적합하다.


여성만을 위한 플랫폼인 헤이조이스는 '콘조이스'라는 온라인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참여자들의 카카오톡 네트워킹까지 주선해 미혼, 비혼, 워킹맘 관계없이 활용하기 좋다. 또 워킹맘만을 위한 커리어 조언 강의들도 1만 원 선에서 들을 수 있으니 갈피 잃은 육아휴직자들이 듣길 추천한다.


2. 당신은 이미 전문가다


육아휴직에 진입한 여성이라면 대체로 회사 내에서 대리 이상의 직급을 달고 있을 공산이 크다. 적게는 3~4년, 많게는 10년 이상의 커리어 보유자다. 실제로 주변에서 둘째 육아휴직을 한 지인들을 보면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경우가 많고 초산이더라도 5년 이상이 많다. 결혼이나 출산이 아무래도 선택인 사항이 되다 보니 자기 커리어를 탄탄히 해놓은 다음에 육아를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우리가 서당개도 아니고 10년 이상 한 분야에 근무한 사람인데. 풍월은 물론이거니와 천자문 정도는 줄줄 외우지 않겠는가. 이 정도면 당신은 당신 분야의 전문가고 신입 사원이나 해당 산업에 근무하고 싶어 하는 취준생 또는 스타트업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역량은 갖췄을 것이다.


내가 선택했던 사이드잡은 당시 3년쯤 된 미디어 스타트업에 외부 필진으로 도움을 주는 방법이었다. 뉴스를 리서치해서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일이다. 자료 조사와 풀어 말하기는 기자의 밥그릇과 젓가락 같은 존재니 일 자체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취미 활동 같았고 육아로 굳어지는 뇌 근육을 잠시 말랑하게 해주기도 했다.


'탈잉'이나 '숨고' 등의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스킬을 활용한 생산 활동에 도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심지어 브런치에 쓴 글을 보고 '직장생활 조언을 해달라'며 초청하는 플랫폼도 있었다. 당신의 직무가 전문성이 필요 없다고 낙담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 '커피챗'이라는 회사도 등장했다. 커피챗은 말 그대로 커피 한잔 하며 가볍게 이야기하듯, 당신의 직무나 기업에 대해 궁금한 이들을 위해 소정의 수수료를 받고 조언해주는 플랫폼이다.




아기를 볼 때는 열정적으로 집중하고 '생산성 추구'를 일종의 취미이자 숨 틀 구멍으로 쓸 수 있다. 정서 발달에 대한 죄책감은 내려두라. 아기는 생각보다 당신의 진심을 알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랑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은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엄마의 아이가 행복해진다는 의미다. 엄마의 행복이 아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오면 거기서 행복 탱크를 충전해 아이에게 전달해야 한다. 육아로 힘든데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벅찰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하루는 길고 당신의 정신력은 강하다. 가사는 청소도우미나 배우자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한마디로, '아이 보지 않을 때 시간 허투루 쓰지 말자'는 자기다짐적 이야기다. 우리의 커리어와 이를 위해 일군 지난 세월은 매우 귀하고 가치 있다. 워킹맘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쇠질을 '씨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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