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H. 카의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음악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60년대 유행했던 바로크 팝(Baroque Pop)은 17~18세기 바로크 음악의 대위법 구조와 짧게 반복되는 선율을 차용하며, 오보에나 바순 같은 당시의 악기를 활용해 고전적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비틀즈의 〈Yesterday〉나 〈In My Life〉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포크와 컨트리 음악이 스코틀랜드·아일랜드 민요에서, 블루스와 재즈가 아프리카 음악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듯, 대부분의 현대 음악은 전통의 변주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한국 음악사에는 약 반세기에 걸친 단절의 시간이 존재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단절’이 아니라 기존 전통을 걷어내고 새로운 계보를 써내려간 역사에 가깝다. 그 전통은 우리가 현재 ‘국악’이라고 통칭하는 음악이다.
약 천년간 한반도 고유 음악 문화였던 국악은 이제 대중 음악에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예컨대 삼국사기(1145)에 등장하는 가야금과 거문고는 후대에도 이어지며 고려와 조선시대의 정악(正樂)의 기본이
된다[i1].
이후 지배 계층은 유교 문화에서 유래한 정악을, 서민들은 판소리와 민요 등 민속악을 즐겨왔다.
이런 음악적 요소는 오늘날의 케이팝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등장하더라도 음악적·시각적 장식으로서 의도적으로 삽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케이팝은 전통의 단절이 낳은 혼종적 장르다. UC 버클리의 존 리John Lie(2012)는 이를 두고 “케이팝의 탄생은 뒤늦은 사건이며, 한국 음악의 역사적 계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평했다.
이 단절의 시작은 근대화의 첫 순간과 맞닿아 있다. 1876년 운요호 사건 이후 조선은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며 서양 문물이 급속히 유입됐다. 조선과 일본의 지배 계층은 빠르게 서양의 음악을 포용했다. 이 과정에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같은 서구식 교육 기관, 그리고 기독교 선교사와 군악대는 주류 음악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전통 음악을 담당하던 장악원의 기능은 축소되었고, 1900년에는 조선 왕실이 직접 양악대(洋樂隊)를 설치하며 서양식 음악 체계를 도입했다. 이 시점부터 한국의 음악사는 전통에서 끊어지고, 서양식 조성과 화성법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음악은 오락적 목적이 아닌 계몽을 위해 교체된 셈이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 이전에도 내정 간섭을 단행했던 일본 정부는 1906년 조선통감부를 설치하고 의도적으로 일본 창가(쇼카)를 체계적으로 보급하려 했다[i2]. 천년의 역사를 유지했던 국악, 그리고 근대에 발생한 애국 창가는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났다.
현대 케이팝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음악 장르들은 1920~193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 일본의 문화통치기가 시작되면서 다수의 음반사들이 조선에 진출하게 된다. 1926년에는 KBS의 전신인 경성방송국도 설치되는데, 이는 일본이 세운 네번째 지역방송국이었다. 경성방송국은 일본어 방송인 1라디오와 한국어인 2라디오를 병행 운영했는데, 이는 KBS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식민지배 시대의 대중 음악은 필연적으로 친일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1937년 장세정이 부른 <지원병의 어머니>는 일본의 대표 작곡가인 고가 마사오가가 작곡한 번안곡이다. 이 노래는 조선인 어머니가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면서도 울지 않는 모습을 그린다. 1940년대 일본 도케 음반, 포리돌 등에서 대중가요 작사가로 활동한 조명암도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등 일본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지지하는 음악을 제작했다[i3].
해방 이후에도 한국 대중음악에서 일본 영향력은 계속됐지만, 미군의 주둔과 함께 미국 대중음악이 유입돼 더욱 다층적인 문화가 형성됐다. 이 시기의 음악 문화는 축음기의 유무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즉, 도시의 유산 계급의 경우 미국과 일본 등 외래 음악에 접근하기가 쉬웠던 반면, 농촌 지역에서는 여전히 민요와 판소리가 대중 음악으로 존재했다.
특히 미군의 주둔으로 유입된 경음악(輕音樂) 문화는 훗날 트로트의 기반이 됐다. 경음악은 클래식과 대중음악 중간 형태의 기악 중심 음악으로 관현악이나 재즈, 브라스 밴드 등을 활용한다. 가사없이 주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용도로 연주됐으며 라디오나 무대, 영화관에서 나오는 미국식 재즈나 라틴 음악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해방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경음악부터 일본 엔카, 그리고 민요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혼재되어 있던 시기다. 이러한 혼란 상태는 1960년대 트로트라는 장르로 수렴한다. 트로트는 창법에서는 일본 엔카와 판소리, 민요 등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운드에서는 경음악이 조합된 근현대 혼종이다. 대표적 트로트 가수인 남진과 나훈아, 이미자 등의 곡에는 경음악식 오케스트라 연주가 자주 사용됐다. 남진과 나훈아는 ‘오빠부대’로 대표되는 한국식 팬덤문화를 양산한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i1]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0523
[i2]조호, 2025, P.29
[i3]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4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