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미국의 대중음악은 성숙기에 이른다. 1980년대에 꽃을 피운 상업주의적 예술성과 MTV 중심의 음악 소비 구조가 안정화되면서, 음악 산업은 새로운 다양성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테크노Techno, 얼터너티브 락Alternative Rocks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했지만, 주축을 이룬 것은 청소년들의 감성을 담은 발랄한 ‘틴팝Teen Pop’과 사회적·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며 저항의 목소리를 담은 힙합이다. 이 두 장르는 음악적 스타일과 메시지에서 극명하게 대비되었지만, 동시에 같은 시기 대중문화의 중심을 차지하며 1990년대 미국 음악의 풍경을 형성했다.
10대 소녀들을 주요 대상으로 했던 틴팝은 사랑과 우정, 일상적 고민 등을 다뤘다. 명실상부 MTV의 황금기에 활동한 틴팝 아티스트는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와 엔싱크NSYNC를 비롯해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나Christina Aguilera, 제시카 심슨Jessica Simpson 등이 있다. 이들은 화려한 댄스와 강렬한 퍼포먼스, 뮤직비디오로 전세계 10대 청소년들의 마음을 녹였다. 남성 그룹이 주로 외모와 화음 중심이었다면, 여성 솔로들은 마돈나의 바통을 이어받아 독립적 이미지를 강조했던 게 특징이다.
틴팝은 음반 산업과 MTV, 청소년 잡지 등과 맞물려 상업주의의 끝을 달렸다. 예컨대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밀레니엄Millenium>> 앨범은 발매 첫주에 113만장을 기록하며 당시 최고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Oops!... I Did It Again>>으로 130만장을 판매하며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기록을 경신한다.
즉, 1990년대 틴팝은 케이팝의 아이돌 산업 모델, 팬덤 문화, 영상 중심 마케팅의 서양적 선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엔싱크 같은 보이 밴드의 구성은 한국 1세대 아이돌인 H.O.T나 신화 등에 그대로 반영됐다.
틴팝의 밝은 세계와는 달리, 동시에 힙합은 도시의 현실과 젊은이들의 고민, 사회적 불평등을 담아 저항과 진정성을 강조했다. 1970년대 중반 뉴욕에서 시작된 랩 음악과 힙합은 1980년대에 급속도로 성장하며 밀리언 셀러와 플래티넘 앨범까지 만들어냈다. 이제 막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MTV와 라디오에서 전미적 인기를 얻는 틴팝의 화려함 뒤에는, 진정성과 저항의 목소리를 앞세운 힙합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했다.
지금까지도 힙합의 대부로 기억되고 있는 엘엘 쿨 제이L.L. Cool J나 솔트앤페파Salt-N-Pepa, 윌 스미스의 커리어가 시작된 디제이 재지 제프 앤 더 프레시 프린스DJ Jazzy Jeff and the Fresh Prince 등이 1980년대 후반에 떠오른 아티스트다. 이 때부터 힙합은 점차적으로 전국적으로 확산했고 1990년대에는 백인 래퍼까지도 등장한다. 힙합은 본래 흑인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백인 래퍼란 그만큼 이 장르가 주류 대중문화에서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잡았음을 방증한다.
에미넴Eminem은 백인으로서 정통 힙합 아티스트의 권위를 확보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기존의 다른 백인 래퍼들은 왜크니스Wackness라고 불리며 이른바 '디스' 당했다. 웨크니스는 힙합의 중요한 정신이라고 하는 진정성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에미넴은 다른 백인 래퍼들과 달리 흑인의 말투나 스타일을 모방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발성과 톤으로 랩을 구현했다. 특히 그는 자신만의 랩 스타일로, '진정성' 있는 내러티브를 담아 새로운 음악성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힙합의 하위 장르인 갱스터 음악도 이 시기에 만개했다. 갱스터 음악은 스타일이나 음악적 구성은 힙합의 랩과 디제잉, 브레이크 댄스 등을 차용하나 보다 서사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하위 범주로 본다. 이른바 '랩 배틀'이라고 하는 문화가 갱스터 음악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는데, 1990년대의 그 모습은 더욱 포악했다. 갱스터 랩은 다른 아티스트는 물론 다른 조직, 도시 간의 경쟁으로도 이어졌다.
갱스터랩의 대표적 아티스트인 투팍 샤커Tupac Shakur, 닥터 드레Dr.Dre, 스눕 독Snoop Dogg 등은 로스앤젤리스 기반 데스로Death Raw 레코드 출신이었고, 뉴욕에는 퍼프 대디Puff Daddy로 더 유명한 션 퍼피 콤스Sean Puffy Combs, 노토리어스Notorious B.I.G 등이 있었다. 투팍 샤커는 1990년대 말 총격으로 갑자기 사망했고, 이후 힙합은 본래의 진정성 있는 메시지보다는 패션과 비싼 자동차, 섹시한 여성 등의 이미지로 포장됐다. 생존자들의 허무주의가 포장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참고 문헌>
브리태니커 편집부. (2025년 10월 20일). 브리트니 스피어스. 브리태니커.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Britney-Spears#ref1084945
Boucher, G. (1999, May 27). Backstreet Boys’ ‘Millennium’ charts best sales week ever.Los Angeles Times.https://www.latimes.com/archives/la-xpm-1999-may-27-ca-41385-stor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