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진화, 트랜스 미디어의 세계

by 나사

케이팝 아티스트와 팬의 ‘암호’는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유튜브와 트위터, 틱톡 같은 뉴미디어는 팬덤의 상징과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하고, 재맥락화하며 새로운 세계로 확장시켰다. 이제 팬덤은 더 이상 특정 그룹의 닫힌 울타리가 아니라, 전 지구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열린 네트워크가 된 것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케이팝 세계화의 기술적 기반이자, 의미적 확장의 기반이 됐다.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통해 급속한 성장을 이룬 것은 물론, 음악 소비자의 다양화로 케이팝의 서사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케이팝을 접하는 인구는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게 됐고, 이에 따라 케이팝 메시지는 보편적이면서도 소구력 있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기존 대중음악의 서사는 주로 이성간의 사랑이나 자기애, 세대간 갈등 등으로 정형화되어 있었다면, 최근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국경을 뛰어 넘어 철학과 종교적 모티프를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며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특히 이런 경향성은 청자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게 된다. 청자는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 속 메시지를 해석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주체로 발전하게 된다. 트랜스 미디어 전략이 더욱 팬덤을 결속하게 되는 것이다. 트랜스 미디어 전략의 가장 성공적 사례로는 영화 <매트릭스>가 자주 언급되는데, 이는 영화 내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문학적, 신화적, 종교적 모티프에 기인한다. 매트릭스의 경우 이미 주인공 이름부터 기독교의 구세주와 삼위일체 모티프를 차용했으며, 이외에도 불교와 도교 철학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


기존 텍스트의 활용은 보다 고전적인 방법이다. 쉽게 말해, 생각치도 못한 작품에서 내가아는 얘기가 나올 때 그 콘텐츠의 소비자는 정서적 동조 또는 자신이 보유한 문화자본을 재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매트릭스>를 사례로 들어보자. 주인공 이름은 구세주를 암시하는 네오NEO, 여자 주인공은 삼위일체의 트리니티Trinity다.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시청자들은 단지 이름만으로도 이 영화가 기독교적 메시아의 재림과 구원서사를 다룰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케이팝 가사에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아이유IU의 노래 <블루밍Blueming>은 “백만송이 장미꽃을, 나랑 피워볼래?”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다. 또 “우리의 색은 gray and blue”는 아이폰 문자 메시지에서 상대가 보낸 문자 말풍선은 회색, 내가 보낸 말풍선은 파란색인 점에 착안했다.


미국의 미디어 학자이자 팬덤 연구 분야의 석학인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컨버전스 컬쳐>에서 미디어의 다변화으로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지고,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키며 지식 커뮤니티의 능동적 참여에 의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트랜스미디어에서 구현되는 허구적 스토리에 접근하기 위해 소비자들은 여러 채널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렇게 모은 정보를 조합해 보다 깊이 있는 해석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즉, 영화나 문학을 감상할 때의 해석 행위가 이제는 케이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타겟은 팬덤 외부에 있는 일반 청자다. 공유된 문화와 배경 지식 등이 없기 때문에 음악, 퍼포먼스 등 작품 그 자체로 승부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Jenkins, H. (2008). 컨버전스 컬처 (김정희원 & 김동신, 역.). 비즈앤비즈. (원저 출판 2006)

이전 23화팬덤의 암호, 세계의 언어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