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Übermensch 듣는데, 너는?

by 나사

2025년 초 지드래곤이 위버멘쉬Übermensch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표했다. 무려 7년 8개월만의 신작이다. 위버멘쉬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상인 '초인'을 의미한다. 니체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개념으로 절대자인 신 중심의 가치를 전복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해내는 존재다.


직전에 마약 수사가 있던 터라 대중의 반응은 더욱 집중됐다. 8년에 가까운 공백기간은 신비로운 수도 기간으로 승화됐고, 그의 모든 스캔들과 가창력에 대한 의구심은 '비인간적 존재'라는 이미지로 무마되었다. 니체라는 상징성이 지드래곤에게도 전이된 셈이다.


이와 유사하게, 블랙핑크의 리사는 2024년 솔로 앨범 <<Alter Ego>>를 통해 ‘또 다른 나’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다층적 정체성과 자아 탐구를 음악적으로 풀어낸 서사적 실험이었다. 예컨대 앨범에는 리사가 다섯 가지의 얼터 에고Alter Egos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얼터 에고는 각기 다른 인격과 스타일을 상징하는 캐릭터들로, 각 트랙마다 이 인격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는 정신분석학적 자아 구조나 현대 심리철학과도 맞닿는다.


SM의 에스파Aespa 역시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을 근간에 두고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다. 에스파는 광야에서 태어나 빌런 블랙맘바와 싸우고 팬들과 교감한다는 'K/Æ' 세계관을 근간에 두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초기 곡인 <Black Mamba>와 <Next Level>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에스파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팬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공동 창조한다. <Super Nova>는 더욱 본질적인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우린 어디서 왔나" 인류의 시작부터 아직까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근원적 질문이다. 에스파의 다중우주 정체성과 실존적 질문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유와 궤를 같이 한다. 즉 정체성의 다층화와 절대적 서사의 해체, 그리고 의미의 상대성을 음악적·시각적 서사로 구체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철학적 담론이 케이팝에서 서사적 전략으로 활용되는 시대임을 보여준다. 즉, 케이팝은 서양 철학의 개념과 상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그것을 자신들의 정체성 구성과 서사 전략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대중문화와 철학이 결합해 강력한 문화자본이 되는 셈이다.


이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와 접점을 갖는다. 부르디외는 지식이나 교양, 교육 수준 등이 자본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말하자면, 문화적으로 가진 게 많은 자일수록 상위 계급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자본 역시 경제적 자본처럼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케이팝에서 철학적 메시지나 다층적 자아 구조를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은, 팬이나 대중에게 일종의 문화자본이 된다. 누가 <<위버멘쉬>>를 듣고 니체적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지, 누가 에스파의 음악에서 다층 자아와 '광야'의 함의를 찾아낼 수 있는지가 문화적 수준이 된다. 케이팝의 이해도가 소비자의 수준과 취향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는 셈이다. 동시에, 이를 구현해내는 아티스트는 ‘철학적 깊이를 갖춘’ 이미지로 브랜딩된다.


이렇게 철학은 대중음악의 프레임에서 하나의 기호로 작용한다. 이른바 '철학의 기호화'다. 이는 철학이 더 이상 순수 학문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하나의 스타일, 상징, 감성 코드로 전유되고 소비되는 경향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즉, 철학은 이제 개념적 깊이나 논리적 체계성보다는 그것이 유발하는 ‘분위기’, ‘정서적 울림’, 혹은 ‘지적 이미지’로서 소비되며, 하나의 상징 자본이자 마케팅 자원으로 기능한다.


<참고 문헌>

김경림. (2025). 텍스트 네트워크로 분석한 BTS 음악과 실존주의 서사: 팬덤의 트랜스미디어 참여와 철학의 기호화.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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