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서 '우리'로 성장하는 BTS 서사

by 나사

BTS의 초창기 앨범들을 들여다보면, 신인 그룹으로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집부터 3집까지의 서사는 말하자면 ‘자기 정의의 시기’였다. 윤지영은 이 시기를 “위계적 구별이 전제되어 있는 ‘우리’의 시대”라 표현했는데, 이는 BTS가 막 세상에 등장해 자신들의 위치를 찾아가던 불안하고 역동적인 순간을 잘 짚어낸 표현이다.


심리학자 머리 스타인Murray Stein이 말했듯, 우리는 사회 속에서 “다른 얼굴을 만나기 위해 얼굴을 쓴다.” BTS의 초기 앨범은 바로 그런 ‘페르소나의 형성기’였다. 데뷔 초, 그들은 아직 완전히 자기 자신일 수 없었다. 대신 사회와 대화하기 위한 얼굴, 청자와 접점을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자아를 선택해야 했다. <<2 COOL 4 SKOOL>>이나 <<O!RUL8,2?>> 같은 초기 앨범에는 이런 ‘사회적 자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고, 청춘의 분노를 외치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서사는 신예 아이돌이 세상에 건네는 첫 선언이었다.


시간이 지나 4집 <<DARK & WILD>>와 5집 <<화양연화>>에 이르면, BTS의 음악은 점차 내면으로 향한다. 이전까지가 자신들의 ‘얼굴’을 만들어가는 시기였다면, 이 두 앨범은 그 얼굴이 세상과 부딪히며 ‘고정된 자아’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사회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을 규정하는 과정, 다시 말해 ‘공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시기였다. 페르소나라는 개념은 이 시기의 BTS를 정확히 설명한다.


그다음 전환점은 여섯 번째 앨범 <<WINGS>>이다. 가상의 자아를 설정하고, 연기해 내는 이 앨범은 일종의 싸이코드라마Psycho Drama다. BTS는 분열된 자아, 억압된 내면, 그리고 욕망과 죄의식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각 멤버가 독립적인 솔로곡과 쇼트 필름을 통해 자신만의 내적 서사를 드러내는데, 이는 일종의 심리극이자 자기 탐색의 여정이다. 예를 들어 멤버 V는 의 영상에서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죽이는 역할을 맡는다. 부친살해 모티프는 서구 문학에서 ‘성장’과 ‘자각’의 통과의례로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WINGS>>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차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콘셉트 차용이 아니라, ‘나 자신 속의 또 다른 나’를 인식하고 통합하려는 심리적 여정을 그린 것이다. 이 시점에서 BTS의 서사는 단순히 “세상에 맞서는 청춘”에서 “자신과 싸우는 인간”으로 전환된다.


<<LOVE YOURSELF>> 시리즈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한다. 이 앨범은 BTS가 일관되게 천착해온 주제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앨범명대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BTS가 자신들에게, 그리고 청춘에게 전달하는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융 심리학에서는 자아를 ‘페르소나(공적 자아)’와 ‘그림자(억압된 자아)’로 나눈다. 융에 따르면, 진정한 자기 수용은 이 둘을 통합할 때 이루어진다. BTS의 ‘Love Yourself’ 메시지는 바로 그 심리적 과정의 대중적 표현이다. 자신이 숨기고 싶은 면을 인정하고, 그것까지 포함해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는 BTS가 <<WINGS>>에서 마주한 내면의 어둠을 통과한 후 도달한 철학적 결론이었다.


이 시기 BTS의 노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우리’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우리’의 의미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바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나와 멤버들” 혹은 “나와 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점점 더 확장되어, 아티스트와 팬, 나아가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 변모했다. 초기 앨범에서 ‘우리’가 정체성의 탐색 단계였다면, <<MAP OF THE SOUL>> 이후에는 존재론적 가치, 즉 “세상 속의 우리”라는 보다 포괄적 의미를 지닌다.


이 관계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지영은 BTS와 팬덤 ARMY의 관계를 들뢰즈의 ‘리좀(rhizome)’ 구조에 비유했다. 리좀은 생강이나 연근처럼 중심이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뿌리를 말한다. BTS와 ARMY의 관계 역시 그렇다. 한쪽이 중심이 되어 명령하고 다른 쪽이 따르는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해석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증식하는 관계다. 팬들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BTS의 서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창작자이자 동반자다.


이런 맥락에서 2019년, <<MAP OF THE SOUL>> 앨범 발표 당시 슈가가 “특별한 팬들을 만난 게 우리의 특별한 점”이라고 말한 이유도 명확해진다. BTS의 음악은 단지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BTS의 지난 10년은 '우리'로 확장되어온 여정이었다. 이들의 음악은 존재론적 질문,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품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독일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사상과도 맞닿는다. 부버는 <나와 너(Ich und Du)>에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 존재를 ‘나-너’의 관계로 설명하면서, 오직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나’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BTS의 ‘우리’가 바로 그 관계적 존재론의 실천이다. 그들의 음악은 타인과의 연결, 팬과의 공명,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BTS의 서사는 어느새 '청춘의 방황'에서 '인류의 공명'으로, '나에 대한 서사'에서 '우리'로 확장되었다.


<참고 문헌>

김경림(2025). 텍스트 네트워크로 분석한 BTS 음악과 실존주의 서사. 고려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이지영 (2018). BTS 예술혁명: BTS과 들뢰즈가 만나다. 서울: 파레시아.


윤지영 (2023). BTS 노래에 나타난 성장의 의미: 자기계발적 주체의 성공에서 탈주체적 생성으로. 기호학 연구, 74(0), 149-180. https://doi.org/10.24825/SI.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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