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이 말은 클리셰가 아니다.
세상에 쉬운 출산은 없다. 출산 과정에서 산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사실 모든 출산은 난산이라고 해도 아쉽지 않다.
2019년 8월 15일 새벽 3시 25분 갑자기 양수가 새기 시작했다. 속옷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양수가 나왔고 피도 비치기 시작했다.
병원 분만실에 전화하니 당장 오라고 한다. 양수가 새면 감염 위험이 있다고.
새벽 4시께에 가족분만실로 입원했다. 새벽에 캐리어를 챙겨 나오는데 그냥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실감은 여전히 나지 않는다.
자연주의 분만을 지향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주의 분만과는 거리가 매우 먼, 아주 과학적인 분만이었다.
제모, 회음부 절개에 관장. 산모의 3대 굴욕은 다 겪고(그리 굴욕적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온몸은 항생제와 인공 호르몬 덩어리다. 애당초 자연주의 분만병원에 간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결과다.
죽고 싶을 정도의 진통이 3차례(3번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세 차례) 왔다. 처음은 오전 9시경이었다. 자궁수축 촉진제인 인공 옥시토신을 맞았을 때다. 갑자기 1분마다 온몸을 차라리 부수고 싶은 진통이 1분씩 지속됐다. 남편 손을 붙잡고 나의 애착 수건을 입에 물고는 괴성을 고래고래 질러댔다. 근데도 내진 결과는 2cm 열렸다고 한다. 촉진제 효과가 없다는 걸 확인한 간호사는 '아기한테 산소가 가지 않으니 빼겠다'라고.
그러고 나서는 5-7분 간격의 참을만한 진통이 7시간이나 지속됐다. 무려 7시간이다.
자궁경부도 열리지 않아 쌩으로 진통을 했다. 저녁 7:30이 되어서야 겨우 4센티 넘었다고 한다.
애당초 무통은 신청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목숨을 걸고 세상에 나오는데 나 혼자 편하자고 무통을 해야겠냐, 진통 소강기에 아이와 호르몬으로 소통하겠다는 욕심에서였다.
아아 나약한 사람아. 체벌이나 어려움 없이 자라온 우리 세대는 고통에 얼마나 힘없이 무너지는가. '차라리 죽고 싶다' 급의 고통을 두어 차례 겪고 병원에 입원한 지 15시간 정도 지나니, 이러다가 고통에 지쳐 아이 낳을 힘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후 8:30 무통을 결국 맞았다. 자궁 경부가 5cm 정도 열렸다고 했다. 이제 정말 내게도 무통 천국이 열리는 것인가. '천국은 죽음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곳'이라고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내게는 그저 분만용 타이레놀 같은 정도였다. 그래도 무통 덕에 1시간 반 정도를 강한 진통을 덜 느끼며 견뎌냈다. 확실히 막판에 쓸 힘을 비축하기엔 적당했다.
10시께에 무통 효과가 풀리고 죽고 싶은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나의 출산 동반자인 남편은 계속 손도 잡아주고 호흡 코칭도 해줬다. 하지만 진짜 죽고 싶을 만큼 아파서 성질만 냈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시키는 대로 했으면 더 빨리 잘 나왔을 것이다.
10시 50분 내진. 갑자기 간호사가 힘을 주라고 한다. 대변 볼 때처럼 말이다. 나처럼 변의라는 걸 모르는 대장의 소유자는 알아듣기 어려운 주문이다.
그건 둘째치고 갑자기 힘을 주라니. 애기 머리가 보인다니.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겨우 5cm 아녔던가.
여하튼 고지가 보인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힘을 줬다. 그게 또 잘못됐다고 난리난리. 호흡을 제대로 못해서 애기한테 산소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산소마스크까지 끼고 재도전. 네댓 번 도전하다 보니 감을 잡았다.
당직 원장님이 들어오고 다시 힘주기가 시작된다. 이제는 진짜 끝이란 생각에 안 듣던 말도 잘 듣는다. 남편이 시킬 때는 '나라고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냐!'라고 소리쳤던 내가 이젠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한다. 이것만 잘 들으면 된다! 라며 최선을 다했다.
머리가 빠지고, 어깨가 나왔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엄마가 됐다.
엉엉 우는 남편과 달리 나는 끝났다는 안도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내 젖가슴에 안고 태교 할 때 불러주던 영원한 주제가 '친구야 나는 너를 사랑해'를 낮게 읊조리니 아기가 덜 운다. 엄마라고 알아보나 보다. 심지어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어보려고 시도도 한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을까.
그 후로도 나는 자궁 수축도 제대로 되지 않고 출혈도 너무 심해 네댓 시간을 분만실에서 보내야 했다.
피 빼는 일도 고역이었다. 욱신거리는 회음부는 또 어떤가.
출산은 밤 11시 32분에 했는데 나는 익일 오전 5시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후처치도 계속됐고 호르몬 영향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분명 나는 생사의 기로까지 갔다 왔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쩌면 엄청나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을지도 모른다. 옥시토신 샤워라고 하는데, 이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면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심지어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나. 아기를 낳으면서 정신력까지 엄청나게 성장한 느낌이다. 엄마 될 준비를 몸이 먼저 하는 걸까.
탯줄로 우리는 분리됐지만 이제는 공생이 아닌 동행의 관계가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엄마가 되어간다. 눈썹이랑 머리털은 확실히 날 닮은 내 딸. 이제 같이 성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