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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Aug 26. 2019

가슴이 거덜 날 것 같습니다.

가슴이 거덜 나기 일보직전이다. 아이를 낳고 최소 3개월은 모유 수유를 직접 하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다. 목표가 있고 의지도 있는 곳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모유수유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실 굉장히 이기적이다.


아기를 트림시키는 일은 너무 귀찮다. 젖병 닦고 소독하기도 성가시다. 그래서 그냥 가슴에서 직접 뽑아내는 방법이 선호된다. 설거지 거리도 없고 다 먹이고 재우면 그만이다. 여기저기서 모유가 분유보다 영양적으로, 정서적으로 훨씬 좋다고 하니 모유수유를 고집하는 데에 설득력도 생겨서 감사하다. 가끔씩은 분유를 하루에 한 번 정도 먹이기도 한다. 나의 부지런함은 '분유 하루 한번' 정도인 것이다.


이기적인 동인은 대체로 말로가 좋지 않다. 모유수유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무지가 참사를 낳았다.


참사라고 하기도 거창하다. 많은 산모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숭고함, 모성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모유수유는 사실 고행길이다. 남성은 물론 미혼 여성, 기혼이지만 아이가 없는 여성은 절대 모르는 새로운 고통의 영역이다.


빠른 산모들은 출산 전에도 유즙이 돌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출산 후 유방에 젖이 돌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출산 직후부터, 빠르면 당일부터 유방이 마치 출산의 고통에 보복하듯 분기탱천하기 시작한다. 간혹 아줌마들끼리 '아이를 낳고 모유를 먹일 때는 가슴이 수박만 해졌다'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과장된 것은 아니다. (성인 손바닥 크기의 애플 수박 정도랄까) A컵이었던 당신은, 혹은 당신의 아내는 이내 D 내지 E컵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세상의 볼륨이 아니다.


먼저 유즙이 돌고 난 후에는 초유가 3~5일 정도 나온다. 찐득하고 버터 녹인 색의 액체인데 10여 년 전에 국내 분유 회사에서 '초유의 힘'이라는 건강식품 라인을 론칭할 정도로 영양가가 풍부하다.


각설하고, 초유까지는 양이 비참해 모유 수유에 대한 고통도 없다. 기껏 유축해봐야 20~30㎖ 나오는 정도다.


실전은 출산 후 1주일께 나오는 '이행유'부터가 아닐까 싶다. 일반적으로 모유라고 말하면 이때부터를 지칭한다.

이행유부터는 하루에 1천cc가 나온다. 1ℓ다. 1ℓ의 액체가 당신의 가슴을 (다른 의미로) 터질 듯하게 만든다. 양쪽으로 나눠도 500㎖ 우유팩을 하나씩 가슴에 차고 다니는 꼴이다.


이 시기 여성의 가슴은 개당 9천 원짜리 프리미엄 복숭아, 내지는 멜론 정도 크기로 변한다.

가슴이 커져서 좋을 것만 같은가? 젖이 많아져서, 아이에게 먹일 것이 많아져서 행복할까?


감당되지 않는 양의 액체에 어깨는 무겁고, 가슴 피부는 점점 얇아진다. 무엇보다 몇 배씩 부푼 유선들이 고통을 유발한다.


유선에 젖량이 많아지면 고주파 마사지기를 가슴에 단듯한 느낌이 생긴다. 젖이 불어날수록 그 통증은 강해진다.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찌릿찌릿해서 참을 수가 없다.


이때 젖을 제대로 배출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아이에게 먹이든가 유축을 하지 않으면 유방 안에서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진다.

유선이 부풀 수 있는 크기는 한정되어 있고 양은 늘어난다. 유선 어디선가 정체 현상이 생긴다. 젖이 고이고 염증이 생긴다. 젖몸살(유방울혈)의 시작이다.


젖몸살이 생기면 가슴은 옷에 닿는 것만으로도, 심지어 당신의 숨결이 닿기만 해도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 경우엔 병원에 가서 항생제 처방을 받아야 한다. 심해지면 아예 칼로 째고 고름을 빼내는 경우도 있다.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고통을 겪기에 수유모들은 끊임없이 가슴에 집착하게 된다. 처음에는 조리원 동기들과의 '모유량 경쟁' 때문에 가슴 마사지가 필수인 줄 알았다. 막상 애를 낳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산후조리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가슴 관리는 수유모들에게 생존 문제다.


유두 또한 고통을 받는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젖 먹던 힘까지'라는 노래 가사는 결국 '사생결단으로 힘을 내라'는 메시지다. 아기가 모유를 먹는다는 것은 죽지 않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유의 존재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한다.


그래서 몹시 필사적으로 젖을 빤다. 유축기라는 기계가 있지만 아기가 무는 힘에 비교하면 정말 깔짝대는 수준 정도다.


사생결단의 힘으로 유륜과 유두를 물다 보니 아기가 물고 난 모습대로 유두는 변형된다. 심한 경우 균열이 발생하기도 한다. 균열이 심해지면 이 자리에 세균이 침투해 (또) 유선염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고통을 없애지는 못하고 경감하고자, 수유모들은 가슴 마사지에 열을 올리게 된다. 보통은 7만원정도인데 조리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회당 15만원 이상으로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이쯤 되면 뭐라도 해서 가슴 통증을 줄이고 싶은데 역설적으로 가장 좋은 치료방법은 아기가 직접 빨아주는 것뿐이라고 한다. 아기가 빠는 힘으로 유선도 뚫고 젖량도 조절되어 유방울혈을 예방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 아이가 빠는 과정이 가장 고통스럽단 게 문제다.


무지가 낳은 도전 정신에 나는 젖을 물릴 때마다 '으아악'하고 통곡하고 있다. 이걸 물려야 아이도 (먹고) 살고 나도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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