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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Nov 29. 2019

졸업 논문 대필 의뢰가 들어왔다

대학생 기말고사, 졸업 시험 시즌이 됐다. 10년 전 이 시기가 생각난다. 내 졸업 논문 주제는 W.H. Auden의 새해 편지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적 관점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였다. 오든은 새해 편지를 총 3장으로 나눴는데 인간이 궁극적으로 종교를 통해 진정한 실존적 자유를 얻는다는 점에서 키에르케고르 사상과 유사하다는 내용이었다.


한 학기 내내 중앙도서관에 지박령처럼 붙어있으면서 진정한 학구적 희열을 느꼈다. 닫혔던 대천문이 열리고 뇌 안에 있던 지적 즐거움이 구름까지 용솟음치는 느낌이었다. 경직된 뉴런들의 해방이요 꺼진 축삭(axon)의 부활이었다.


밤 11시 중앙도서관 문이 닫힐 때 코를 깨우는 찬 가을밤 공기를 맡으며 하산하면 하루를 오롯이 살았다는 성취감이 나를 에워쌌다.


그렇게 보낸 4학년 2학기는 아직도 내게 추억의 시간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학문에만 순수하게 열중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리운 시절이다.


인터넷, 재능 나눔, 프리랜싱, 아르바이트 어플 등이 활성화되면서 이런 추억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최근 부쩍 졸업 논문 대필 의뢰가 많이 보인다. 경제학에서 영문학 국문학까지 다양하다. 가격은 5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특이한 거겠거니 했는데 수가 계속해서 늘어난다. 의뢰 지역을 보면 학교도 대충 짐작이 간다.


과제도 아니고 졸업 논문 대필이라니.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 사정이 뭔지 정말 들어보고 싶었다. 기말고사가 바빠서 못한다는 사람,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서 그냥 대필하겠다는 사람 등. 소스와 아이디어는 자신이 주니까 괜찮지 않냐고 한다. 표절이나 부정행위는 아니지 않냐고.


졸논을 쓴 지 10년이 다되어가서 나도 뭐가 부정행위나 표절로 간주됐는지 그 기준을 명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대필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는 명백한 부정행위다. 대필이 적발되면 학위 취소는 물론 대필자까지도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논문 대필은 형법 제137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제314조 업무방해에 해당하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죄"라고 한다. (https://www.google.com/amp/www.donga.com/news/amp/all/20120523/46446927/1)


최근 인터넷과 모바일로 글쓰기가 성행하고 프리랜서도 쉽게   있게 되면서 이런 일들이  쉬워진다. 예전에는 논문 대필을 요구하는 사람, 해주는 사람들끼리 그들만의 시장이 있었다면 이제는 오픈 마켓이다. 글쓰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테니  논문  써다오 하는 세상인 것이다. 아무리 아이디어와 리서치를 의뢰인이 했다고 하더라고 작문이 그냥 도구도 아니고  또한 지적 재산인데 타인의 재산을 활용해  논문을 어떻게 온전히 자신의 이름만 올려   있는지 의문이다.


석사나 박사를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학문의 길을 간 것이기 때문에 조금 다르지만, 학사만 딸 생각인 사람들은 졸업논문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논문이 될 것이다. 졸업논문만큼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자유롭게 공부하고 탐닉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그런 기회를 몇십만원 주고 날리기에는 아쉽지 않을까 싶다.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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