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Jun 30. 2023

과유불급: 과하게 있으면 급함이 없다

 "그런데 왜 가족관계에서 여자들은 다 'ㅁ'이 들어가?"


 "엄~마~, 엄마는 내가 좋아? ", "엄~마~, 엄마는 내가 싫어?", "엄~마~, 엄마는 나를 사랑해?"멜로디까지 입혀서 시도 때도 없이 묻는 사춘기가 간당간당한 아이. 

 최선을 다해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설명해 주는 시기는 진즉에 지났다. 아침에 들은 노래가 하루 종일 혀 끝에 맴도는 것도 아니고, 귀에서 울릴 지경이다.

 이제 엄~마 금지랬더니 "마~미~"이러면서 노래를 부른다. 마미도 금지하니 "아~줌~마~ 이런다.


 아줌마 타령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묻는다. "그런데 왜 가족관계에서 여자들은 다 'ㅁ'이 들어가?"

 엄마, 어머니, 할머니, 숙모, 고모, 이모, 줄줄이 예시가 나온다. 여기에 아줌마와 마미를 안 넣은 게 어디냐.

 근데 진짜 다 'ㅁ'이 들어가네. 숙모, 고모, 이모야 한자어니 그렇다 쳐도  엄마, 어머니, 할머니까지. 물론 다 엄마에서 파생되어 아주머니까지 간 거겠지만, 그래도 심지어 마미까지 어쩜 다 ㅁ이 들어갈까.

 이유를 파기보다는 이런 의문을 가진 아이가 괜히 기특하다.


 저번에는 "엄마 '짜장면'은 맛있어 보이는데 '자장면'은 맛없어 보인다. 근데 '짬뽕'도 맛있을 것 같은데 '잠봉'은 또 맛없을 것 같아." 이런다.

 순간 내가 언어 천재를 낳았을까 하며 '정말이네 정말이네' 방정치 못한 맞장구를 다. 떡볶이와 덕복이까지 나오자 감탄스러웠다. 기쁨에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이런 걸 생각 해났냐고 하니 아주 차분하게 '응, 책에서 읽었어.' 이래서 급격히 겸손해졌다.


 문과 출신은 다 이렇고 이과 출신은 다 저렇다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문과 머리', '이과 머리' 기준을 들이대면 나를 포함해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 대부분은 문과 성향이다. 상황에 맞는 단어를 골라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어감에 예민하며 잘못 사용된 말에 민감하다. 

 '틀리다와 다르다를 제대로 구분해서 쓰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거나 '저희나라' 좀 그만 하지! 하며 울분을 터다. 서로 딱히 지적하지 않는데도 오탈자 톡 직후에 '아 이거 아니고 이거'하고 스스로 정한  올라오는 사람들이다. 사자성어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심지어 한자어로 적어 올리는 이까지 있다.

출처: 인터넷 짤

 맞춤법 틀리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M. 본인이 원치 않아도 잘못 쓴 글자가 바로바로 보인단다.

 M의 남편 J는 스스로 뼛속까지 공대생이라고 주장하는 이. 잠깐만 대화를 나눠봐도 아 이 사람은 굉장히 머리가 좋구나를 느낄 수 있는, 말 그대로 재기가 넘치는 그분이, 그런데 그 '언어'쪽에 둔감하다.


  술 한잔 한 J가 '토끼 같은 자식들, 떡두꺼비 같은 마누라 생각해서 열심히 돈 벌어야지요' 한다.

 으응? 의외로 아주 자연스럽다. 짧은 적막 후에 웃음이 터진다. M은 질색을 한다. '아니, 나한테는 괜찮아.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한테 떡두꺼비 같은 마누라가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이러면 어쩌냐고!'  밖에 나가서 실수하지 말라고 그렇게 열심히 고쳐줘도 참 일관적으로 떡두꺼비 같은 마누라라고 한단다.

https://naver.me/xLECs6zM 캡처


 음식이 남아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M과는 달리 '물량이 부족하지 않게'를 늘 강조하는 J. 사자성어까지 사용하며 M을 설득한다. '과유불급 이랬잖아. 과하게 있으면 급할 게 없다. 엉?' 분명 아닌 걸 아는데 왜 공감이 되는가.


 모자에까지 털이 촘촘한 패딩을 샀다고 자랑한 M의 여동생. 옷을 입고 모자까지 써 보이며 너무 따듯하다고 신난 처제에게 그는 '처제, 석가모니 같다'라고 '칭찬'의 멘트를 날린다. 가족들은 도대체 거기서 광배를 생각해 내는 건 뭐냐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고 난리인데 J가 '우리 지금 석가모니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광배는 뭐야' 다.

광배가 있는 석가모니상. 이미지출처 https://naver.me/5NdVZ9vH

 '이렇게 말하지 말고 저렇게 말하는 게 좋겠다'는 M의 말에 '두 개 똑같은 말이잖아?'라고 진심으로 의구심을 가지는 J. 어감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그는 '네 말투가 이랬잖아'라는 이유로 혹은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아무래도 저런 뜻인 것 같다'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감정 상할 일이 없어 보인다.


 자기가 기억하는 사자성어는 '먹는 건가'. '먹지 마라' 밖에 없다는 공대출신 직원도 그랬다. 회의를 마치고 '도대체가 왜 말을 저렇게 하냐. 같은 말이라도 좀 듣기 좋게 해야지' 하면서 화를 내는 직원들 사이에서 그는 그런 '디테일'까지는 잘 모르겠다며 업무 자체만 신경 쓰곤 했다.


 으로 본받아야 한다.

 누군가 A라고 이야기하면 그걸 A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도 스트레스 양은 확 줄어들 테다.

 A라고 말한 이와 나와의 관계를 투영하고 그간 역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저 안에 숨어 있을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를 유추한다. A에 살을 붙이거나 심지어 B로 받아들이는 이 사고법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며 부질없고 영양가 .


 단순하고 명확한 텍스트에도 음성지원을 다.  화자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억양과 어감을 넣어 재창조시키며 감정을 싣는다. 문장 끝의 부호가 뭐가 붙었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상대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잠자리에서까지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마치 귀에 컨버터라도 달아 놓은 양 (주로 내가 싫어하는 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고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참으로 비효율적이고 피곤한 일이다. 컨버터, 끄자.


 다른 이의 미세한 감정과 행간에 숨어 있는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던 감정을 읽어 위로가 된 적도 있었겠다.

 그러나 지극히 국한된 범위의 상대에게만이다. 이들 역시 가끔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감정까지  모른 척에는 또 실패한 내가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을테다. 무로 엮인 이들, 일상에서 스치는 이들이라면 그들의 언어에 내 감정을 덧붙이지 않는 것이 백번 현명하다.


"이거 자꾸 딜레마 돼서 큰일이네."

 사에서 자신의 업무가 가장 많고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B가 아침부터 내 자리까지 와 이야기한다. 왜 이 이야기를 내게 하는지, 말하지 않은 의도는 생각조차 하지 말자. 딜레마라 말해도 딜레이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전환 능력. 그 정도면 충분하다.


 A라고 하면 A인 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