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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일어나서 손들어

by 경계성미니멀

새벽에 오한이 들어 오들 오들 떨다가 다시 잠든 것 같은데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잠에서 깬다. 잠이 깨서 목이 아픈 걸 느낀 건지, 목이 아파서 일어나게 된 건지 구분이 안된다. 침을 삼키는 일이 이다지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잠이 들려는 순간 고개가 옆으로 까딱하며 또 깨고 꿈속에 들어가려다 또 깨고 있다. 왜 누워서 졸고 있는가.

목에서 시작한 통증이 코와 귀까지 퍼지면서, 목과 귀와 코가 하나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병원에서 신속 항원 검사를 받는다. '아주 일반적인 코로나 증상이네요' 하시며 검사를 한 의사선생님은 잠시 후에 '코로나인데 코로나가 아니네요. 이상하네.' 한다. 너무 초기라 안 나오는 것 같다며 내일 다시 PCR을 받아보란다.

역시 PCR 검사는 찌르는 깊이가 자가검진과는 차원이 다르다. 뇌까지 찔리는 듯하다. 다음날 검사 결과는 음성이다.


무릎 꿇고 손들고 일어나야 하는 기분이다


고등학교 때 국사선생님은 말 무서웠다. 잠깐만 졸아도 바로 교실 뒤로 쫓아내 벌을 세웠고 조금만 자세가 흔들려도 국사책으로 무자비하게 머리를 후려쳤다. 한 번은 자율학습 시간에 애들 둘이서 교실을 돌아다니다가 감독이었던 그분한테 딱 걸렸는데 선생님은 보자마자 화를 내며 "무릎 꿇고 일어나서 손들어!" 이렇게 큰 소리를 지르셨다. 겁에 질린 아이 둘은 도대체 무릎을 꿇으라는 건지 일어나라는 건지 일단 손을 들고는 어정쩡한 자세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고, 앉아서 그 사태를 보는 우리는 웃겨 죽겠는데 본인이 뭐라고 하신지도 모르고 계속 화를 내시는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웃지도 못하고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참느라 죽을 맛이었다.


박주임은 코로나 확진으로 병가를 마치고 출근했다. 별 증상 없이 지나는 사람도 있다던데 박주임은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들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출근한 박주임의 얼굴에서 광이 난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피부에서 윤기가 느껴진다. 표정도 한결 밝다. 박주임이 원래 눈웃음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일주일 회사 안 나오니까 이렇게 사람이 밝고 환해졌다며 놀리는데 박주임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아픈데도 좋더라고요' 한다. 다들 '그렇지, 그렇지' 며 웃는다.


그런데 그날 오후 정수기 앞에서 만난 박주임 얼굴에 아침에 보였던 광채가 사라졌다. 눈 밑 부분은 이미 어두운 색으로 덮였다. 아니 어떻게 하루도 안돼서 이렇게 되었나. 얼굴을 보고 흠칫 하니 박주임은 밀린 일은 아직 손도 못 댔단다. 본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업무 연락으로 하루 종일 뭐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회사에 오니 잠잠해졌던 기침이 다시 시작됐다면서 컵 안에 비타민 가루를 쏟아붓고 있다.


증상은 코로나인데 결과는 코로나가 아니라 하고

앓아누운 일주일보다 하루 출근이 더 무섭다 하면서도 매일 출근을 해야 하니

아. 무릎 꿇고 일어나서 손들어야 하는 이 기분을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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