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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pr 03. 2022

쉬지 않고 이야기해요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식사 중에 대화를 자제해달라는 문구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지만, 코로나가 없던 때에도 이런 문구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하려니 화제도 개인 일상부터 업무까지 다양한데 남들은 전혀 궁금하지 않은, 특히나 점심시간에 요만큼도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A직원은 평소에도 말이 많은데 점심시간에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말을 하느라 밥을 못 먹었다. 숟가락을 든 채로 가끔은 휘저어 가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남들 다 먹고 이제 일어나려고 하면 그때부터 '아이고, 또 나만 남았네' 이러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달랑 한 시간 있는 점심시간에 이제 커피라도 사 마시러 가고 싶은 직원들은 연신 시계를 보면서 도대체 언제 다 먹나 기다리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말을 이어간다. 직원들은 식사를 마치고 볼 일이 있다거나 어딜 들러야 한다면서 어떻게든 먼저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눈치 없이 '어어, 나 거의 다 먹어가, 나도 같이 가, 산책 삼아 같이 가지 뭐'이러는 거였다.

 견디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식사하러 가는 순간부터 식사시간, 그리고 돌아오는 순간까지 한 시간 내내 이어지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마침 그때 회사 바로 앞 건물에 새로 들어선 헬스클럽에서 점심시간을 겨냥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간단한 운동을 30분 정도 하는 거였는데, 우리 팀에서 자그마치 네 명이 등록했다. A직원과 밥을 먹게 되는 직원들은 한 명 빼고 다 등록한 건데 실상을 모르는 옆 팀의 팀장은 '아니 이 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부지런해?' 하면서 감탄을 했다. 간단하게 김밥 한 줄 사 먹고 30분 운동을 했는데, 이렇게 점심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데 그동안 그렇게 시달렸던 것이 아까웠다.


 다른 시기, 다른 팀에서 만난 B직원은 A직원과는 약간 다른 유형이었다. 평소에 말이 그렇게까지 많은 줄 몰랐는데 이상하게 잠깐이라도 대화가 끊기는 시간이 있으면 그걸 그렇게 못 견뎌했다. 여러 명이 갈 때는 잘 못 느끼지만 둘이 밥을 먹게 되면 대화에 잠깐의 틈도 없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시간, 그 막간에 근무시간에 보지 못했던 스마트폰도 보고 잠깐 쉬고 싶은데 그 직원은 약간의 침묵이 생겼다 싶으면 계속해서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그 당시 사무실 보안 문제로 2명씩 짝을 지어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지키고 그 후에 점심을 먹었는데, 특히 나이 어린 직원들은 B직원과 짝이 되면 그렇게 힘들어했다.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걸 왜 모를까?" 하면서 그들끼리 고충을 나누는 것을 들으니, B직원은 과연 다른 직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걸 알고 있을까 하며 안쓰러웠다.


 점심시간은 근무시간 중 유일하게 쉴 권리가 명시적으로 보장된 휴게 시간이다. 앞에서 말했듯, 근로시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에게만 쉴 권리가 보장된 시간이 아니고, 다른 직원에게도 보장된 시간이란 거다. 다른 직원들이 힘들 정도로 이야기하는 건 민폐다. 지금 돌이켜보면 A에게도 B에게도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어떻게든 기분 상하지 않게 피해 갈까만 연구했는데, 오히려 그때 이야기해주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았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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