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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pr 02. 2022

나 점심 먹으러 출근한다

  점심 먹으러 출근한다.

 매우 극단적 표현이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토요일에 불쑥, 나도 모르게 회사 일을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주중에 끝내려다가 못 끝낸 게 있을 때 더하다. 그러면 머리를 세게 흔들어서라도 생각을 떨치려고 한다. 지금 고민한다고 딱히 대단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주말엔 쉬자.

 일요일 밤에 누우면 애써 밀쳐놨던 그 일이 또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일요일 밤이 가는 게 아쉽고, 내일 출근하기 싫다. 하루 더 쉬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잠든 것도 아닌데 더 자고 싶다. 이럴 때는 내일 점심시간에 뭐 먹을지를 생각한다. 괜히 업무 생각하기 싫으니 뇌를 그쪽으로 사용한다. 아주 진지하게 고민한다. 회사 가기 싫을수록 더 맛있는 메뉴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그걸 먹으러 힘을 내서 출근할 수 있다. 그래, 점심 먹으러 가자.

 

이미지출처 pixabay  글 쓰는 거 보다 이미지 찾는 게 더 오래 걸린다. 힘들다

 점심시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게 오늘의 첫 대면이다. 그런데 "저번에 하라고 지시 내려왔던 거 있잖아요"가 인사말이다. '네, 안녕하세요' 혼자 대답한다. 걸어가는 내내 질문은 이어진다. 중간에 다른 말을 시켜 보아도 꿋꿋이 이어가신다. 궁금했던 것을 많이도 모아놓으셨다. 밥 먹을 때까지도 질문은 계속된다. 이 분은 다 좋은데, 점심시간마다 이러신다.


 입사 2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몇 번의 점심시간을 보냈을까? 그동안 같이 점심 먹은 사람들은 도대체 몇 명일까? 남이 차려주는 맛있는 밥 먹고, 남이 타 주는 커피를 들고, 그 짧은 시간을 틈타 동네 한 바퀴 돌고 들어오면 그  시간힘으로 오후 버틴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사이 유일하게 큰소리로 웃고 이야기하고, 윗사람을 욕하며 대동 단결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간혹 나의 소중한 점심시간이 이렇게 날아가는구나 싶은 사람도 있었다.


나 점심 먹으러 출근한다. 제발, 점심시간만큼은 완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

점심시간 이러지 말았으면 했던 유형을 정리해봤다.


점심시간 업무시간의 연장-계속해서 일 이야기하는 사람

 회의 외에 직원들이 따로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점심시간 같이 밥 먹으러 모인 것을 마치 회의시간처럼 활용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업무 궁금했던 거를 여기저기 물어대고, 결론 내지 못했던 것을 물어보며 의견을 취합한다. 그나마 이 때는 다른 사람 이야기할 때라도 좀 쉴 수 있는데, 단 둘이 밥을 먹는데 아까 그분처럼 궁금했던 것을 싹 모아놨다가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업무시간에는 바빠 보여서 못 물어보겠어요~ '이러면서  물어본다. '지금도 못 불어볼 시간이에요...'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좀 참겠는데, 밥을 먹고 있을 때까지 그치지 않고 물어보면 그때는 정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입사 초기에도 이런 분들은 있었다. 그때 나이가 많았던 한 팀장은, 누가 일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단박에 "밥 먹을 때는 공장 이야기하는 거 아녀" 이러면서 잘라냈다. 현명한 분이었다.


 점심시간은 근로시간에서도 제외된다. 쉬는 시간이라는 거다. 쉬라는 시간에 쉬고 싶은 사람한테 일 물어보는 거는 초과 근무시키는 거랑 다를 바 없다. 그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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