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Apr 13. 2022

12시에는 전화를

 대부분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 모두 같은 시간에 이동하다 보니 주변에 식당이 상당히 있다 싶은 곳도 조금만 늦게 가면 자리가 없다. 식당에서 바로 식사를 하느냐 기다려야 하느냐에 따라 점심시간에 잠깐이라도 산책을 갈 수 있느냐 아니면 밥숟가락 내려놓자마자 바로 회사로 들어와야 하느냐가 결정된다.

 

12시가 되면 바로 나가고 싶다

 특히 몇 년 전에 근무했던 사무실회사들이 밀집한 고층건물이어서 단 1, 2분만 늦게 나가도 이미 엘리베이터에는 '만원'표시가 뜨고 우리 층에서는 문이 열리지 않은 채 내려가 버렸다.  래서 그때 직원들은 12시가 되자마자 겉옷은 손에 쥔 채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직원 D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일부러 전화를 거는 것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점심시간 시작하는 12시 0분에 매번 전화기를 들고 있는 그녀는 출입문 앞에서 엘리베이터와 본인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항상 같은 제스처-왼손으로는 수화기를 들고 오른손으로 손바닥을 몇 번 흔드는-로 기다려달라고 했다. 잠시 후 전화를 끊고 "아이고 미안해 미안해, 끊으려고 하는데 자꾸 말을 하네"하면서 나오는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한참 동안 기다려 나가면 아니나 다를까 이미 만석이 된 식당을 몇 군데 들어갔다와야 했다. 자리를 잡은 식당에서도 이미 앞에 주문이 밀려있으므로 식사는 12시 30분이 넘어서야  나오고, 식사를 마치면 바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된다. 산책은커녕  커피 한잔 테이크 아웃할 시간도 없다. 이러니 그분이 딱히 크게 잘못한 건 아니라 뭐라 할 수는 없밥 먹는 직원들 표정이 어둡고 얼굴에 원망의 표정이 비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매번 반복이 되자 나중에 직원들은 '나오면 연락을 주세요'하고  미리 나가서 식당에서 기다렸는데, 한참 즐거울 점심시간에 그녀에게 어느 식당에 들어왔다고 연락을 하고, 미리 주문해놓기 위해 뭘 먹을 거냐 메뉴를 일일이 불러주고 확인하는 것도 일이었다.  또 늦게 온 그녀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어떤 날은 주문을 다 해놨는데 너무 늦어서 못 가겠다 하여 난처한 경우도 있었다. 것도 저것도 딱히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아침에 전화를 하면 되는데, 왜 꼭 그때인가 참으로 이상했다. 더 이상한 건 매번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그녀의 그 습관은 고쳐지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난 그때 이후로는 12시 땡 하면 하던 일도 멈추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지나치며 "아직 엘리베이터 안 왔지?"라면서 화장실을 가는 행동도 금지다. 점심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솔직히 절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 무엇보다 나의 그 잠깐의 느리작거림이 다른 사람의 소중한 점심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 70일째, 당신의 좋아요에 눈물이 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