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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r 15. 2022

히키코모리가 적성인데, 장기근속 중입니다(1)

신발 하나 못 꺾어 신으면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히키코모리. 웃으면서 친한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히키코모리가 적성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말하는 나도, 듣는 그들도 안다.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니라는 것.


히키코모리가 적성인데 회사를 다닌다는 것, 그것도 장기근속 중이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집구석 구석을 치우고, 정리하고, 스텐을 반짝반짝하게 하는 것이 즐거운데. 생계형임을 감안하더라도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벽만 보고 내 일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회사는 없겠지?  




출근 직전 신은 양말 한 짝에 아주 작은 구멍이 나있다. 같은 걸로 한 짝만 갈아 신고 보니 색깔만 같고 왼쪽은 발목양말, 오른쪽은 덧신형 양말이다. 둘 다 덧신형으로 갈아 신고  주구 창창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신고 출발한다.  절대 벗겨지지 않는다며 뒷부분에 실리콘까지 붙은 양말은 이미 발바닥에 가있다.  5분도 안돼서 왼쪽 아킬레스건 부분이 많이 따끔거린다. 새 운동화도 아니고 뭔가 하고 보니 신발 안쪽 덧대어진 천이 벗겨지면서 안에 딱딱한 것이 맨살에 계속 닿으며 상처를 냈다.  발바닥에 있던 양말을 끌어올려보아도 몇 걸음뿐이다.  꽤 아프다. 신발을 꺾어 신기 싫어서 미련하게 더 걷다가 결국 꺾어 신고 보니 이미 피가 맺혔다. 신발을 꺾어 신으니 상처 난 곳은 안 아픈데 이상하게 발가락에 쥐가 나는 것처럼 불편하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실내화로 갈아 신고 밴드를 붙이니 편하다. 덧신 양말은 실내화를 신으면 안 내려간다. 상처가 났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오는데 또 그 통증이다. 밴드가 너덜거리고 있었다. 다시 붙여봐도 너덜너덜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행히 마침 지나고 있던 대형마트에 들어가서 발목 양말을 사서 밴드를 고쳐 붙이고 갈아 신으니 요새 말로 세상 편하다.


회사에 돌아오고 나서야, 마트에는 신발도 파는데 어째서 양말 살 생각만 했나 싶은 거다. 안쪽이 벗겨진 신발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상처가 안 나게 양말만 바꿔 신으면 된다고 생각한 모습이, 참 오랜 기간  한결같이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회사를 바꿀 생각은 못하고, 상처받을까 스스로 보호장비를 갖추는 나 자신이랑 비슷하다. 그렇게 상처가 난 채로 걷다가도 실내화로 갈아 신고서는 또 통증을 잊고 있었다는 게, 밥 먹는다고  다시 신발을 신는 게, 주말 이틀 동안 회사에서 벗어나 쉬며 망각했다가 월요일 또다시 똑같이 회사로 출근하는 모습 같다.


생각해보니, 신발을 꺾어 신는 것조차 고민하느라 상처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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