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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pr 24. 2022

히키코모리가 적성인데 장기근속중입니다(2)

히키코모리가 적성인데 장기근속중입니다(1)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40이 되며 이제 건강을 위해아니생존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자각한다. 이런 를 응원하고자 언니가 보내 것이 이 신발이다.

 냉장고를 새로 사면서 검색부터 주문까지 점심시간 단 15분이 걸린 나에게, 신발은 가장 사기 어려운 물품이다. 발이 큰 데다 약간의 무지외반이 있어, 신어보고 발 끝을 꼼지락거려보고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까지 해서 사 와도 막상 외출을 하면 발 아치 부분이 꺾일 것 같다.

 그런데 언니는 쇼핑몰에서 신발을 주문해 보내준단다. 신세계다.



  우려와 달리 배송 온 운동화를 신는 순간 탄식마저 나온다. 발바닥이 이렇게 푹신할 수가. 발등을 누르는 부분도 부드럽다. 그런데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작았다. 확 작았으면 미련이 없었을 텐데  약간에 푹신한 바닥을 포기할 수가 없다. 늘어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기로 한다.

 신다 보니 정말로 조금씩  늘어난다. 점점  편해지니 마다 옷은 바뀌어도 신발은 바뀌지 않는다. 거의 매일 그 신발을 신었다. 어느 순간부터 숙원사업처럼  편하고 예쁜 신발 사고 싶다는 마음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는데,  운동화가 생기고 , 아주 예쁘거나 꼭 맞 않아도 가진 신발 중 가장 편하니 그 뒤로는 신발을 단 한 켤레도 사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나의 운동화 사진을 찍으려 보니 어느새 꼬질꼬질해져 있다.

 하지만 '약간 작은' 그 아쉬움은 계속해서 남았다. 역시나 많이 걷거나 피곤한 날에는 그 약간의 작음이 발을 조이고 힘들게 했고, 엄지 왼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에 화상이라도 입은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집에 와서 신발을 벗어두고 좀 쉬고 나면 , 나는 또 다음 외출에 어김없이 그 운동화를 찾아 신는 것이다.


  독서실에서 몇 달을 틀어박혀 지내며 최종 면접에서 몇 번 떨어지다 지금의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일단 다니면서 다른 곳을 준비해야지'라고 생각했다. 회사 자체에 대한 평가와 관계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입사 20년 차를 내다보는 현재까지 계속해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는데' 생각만 하면서 용기를 내 원하는 일을 할 생각은 못하고 장기근속중인 거다. 


 마치 아주 살짝 작은 운동화가 아쉬우면서도 막상 새 신발을 찾을 생각은 안 하는 것처럼, 이제 익숙해졌다 했던 그 신발에 맨살이 찢겨 피가 나도 신발을 버리고 새로 살 생각은 못하고 양말만 사서 신고 있는 거처럼, 나는 여전히 가끔씩 회사가 힘겨우면서도 매일매일 출근하고 또 나도 모르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신발이 아예 맞지 않았다면, 신자 마자 정말 못 견딜 만큼 아팠다면, 나는 다른 신발들을 버린 것처럼 과감 수 있었을 다. 그런데 다른 신발들에 시달리다 이 신발을 신는 순간 편했고, 이만한 신발을 또 찾으려면 힘들겠다 싶은 그 마음은 결국 다른 신발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게 했다.


 아마 그 시기 나는 더 이상 공부하기가 버겁고 힘들었을 거다. 어디라도 안정적으로 적을 두고 싶었던 마음이 컸을 게다. 하지만 적만 두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겠다던 그때 의지와 달리, 나는 이 회사라는 신발을 신고 나서는, 적이 없었을 때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히키코모리가 적성인데도 장기근속중이다.



(1) 편을 쓰고 한 달이 넘어서야 (2) 편을 썼다. 도대체가 마무리가 되지 않고, 지금도 흡족하지 않은데,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어서 일단 발행을 한다.



 도대체 신발은 뭐고 양말은 뭐냐 싶으실 테니..



https://brunch.co.kr/@0707d9594a104b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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