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한 줄에 5천 원이 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당신.
4인 가족에게 '간단하게 분식으로 때운다'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외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집에서 푸짐하게 먹기로 한다. 재료를 듬뿍 넣은 떡볶이와 어묵국, 에어프라이어에 돌린 튀김과 순대까지 성황리에 팔렸다. 남은 것은 떡볶이. 하나같이 떡보다는 양배추나 어묵, 라면사리를 좋아하는 가족들을 알기에 일부러 조금 넣었는데도 떡만 남았다.
어차피 떡은 먹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버려야겠다고 이성적인 판단을 했는데 힘들게 요리한 것이 생각나며 망설여진다. 놔뒀다가 살짝 다시 끓여 떡도 먹고 남은 소스에 밥을 볶아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정성껏 밀폐용기에 다시 담는다.
다음날은 외식을 한다. 그다음 날 떡볶이를 먹자니 식구들은 싫단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한다. 다시 프라이팬에 넣고 데우는데 너무 휑하다. 어묵을 조금 잘라 넣어본다. 면사리도 반 넣어본다. 마침 있는 양배추도 넣는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 집에서 재현된다. 떡볶이 3인분은 족히 된다.
그러나 새로 소스를 만들어 끓였던 그저께의 떡볶이 맛이 아니다. 냉정한 가족들은 두 젓가락도 먹지 않고 라면을 찾는다. 혼자서 양배추를 집어먹어본다. 왜 안 먹는지 알겠다. 맛없다. 이제 음식물 쓰레기를 내 몸 안에 넣기는 그만하기로 굳게 결심하지 않았는가. 과감히 버리기로 한다.
그저께 남은 떡볶이를 담아 넣었던 밀폐용기와 프라이팬, 조리도구, 그릇들이 한가득 설거지로 나왔고 새로 넣은 신선한 식재료를 포함한 음식물 쓰레기는 세배로 불어났다.
저녁으로 족발을 배달시킨다. 막국수, 야채와 무생채, 김치, 반찬까지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플라스틱 용기들이 가득 담겨 온다. 맛있게 먹고 치우려고 보니 애매하게 조금씩 남아있다. 요새 김치와 야채가 엄청 비싸다며 남은 것들을 반찬통에 담는다. 아주 조금씩 남은 편 마늘과 청양고추 슬라이스도 활용해 볼까 하고 따로 담는다. 이렇게 조금씩 담다 보니 냉장고 안에 작은 반찬통만 대여섯 개다. 일주일 뒤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반찬통들. 김치라도 먹자고 열어보지만 역시 남아있던 이유가 있었다. 며칠 사이 더 맛이 없어졌다. 마늘에는 곰팡이가 피어있고 고추는 까맣게 변했다. 그날도 배달 용기를 일일이 씻고 분리수거하느라 고생했다. 작은 그릇들을 다 꺼내 모두 비우고 치우고 설거지하는 오늘, 당신은 마치 2부를 치르는 기분이다.
지금 안 먹는 건 나중에도 안 먹는다. 냉장고 스탑오버 필요 없다. 설거지만 늘어난다.
터무니없이 많은 양을 꺼냈던 게 아니라면 남은 음식에는 이유가 있다. 막 요리해 처음 식탁에 올렸을 때조차 먹지 않았는데 냉장고에 들어갔다 텀을 두고 다시 만난 그것이 더 맛있어질 리 만무하다. 들인 노력과 시간과 재료와 돈이 아깝지만 지금 버리는 것이 그나마 나의 에너지를 포함한 여러 손해를 줄인다.
남은 음식들이 우리 집 냉장고에 스탑 오버할 필요 전혀 없다. 관광지 아니다. 냉장고에 다시 넣는다고 밀폐용기에 옮겨 담아 안 그래도 부족한 냉장고 공간을 차지하고, 다시 꺼내 데우고 새로 접시에 담고, 심지어 거기에 신선한 재료를 더해 버릴 양을 늘리고 설거지를 늘릴 뿐이다.
통장 잔고가 설거지통에 그릇 쌓이는 속도로 불었다면 우리 모두는 회사 그만두고 놀고먹을 수 있을게다. 안 그래도 잘 쌓이는 설거지, 스스로 보태지 말자.
@ pixabay 접시에 덜어 먹고 조금씩 남은 반찬들도 마찬가지다. 이 국물, 이 양념 다음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다시 냉장고에 소중하게 옮겨 넣었던 것들은 대부분 나중에 발견되고 바로 버려진다. 지금 버리나 나중에 버리나의 문제다. 강조하지만 지금 버리는 것이 에너지가 가장 적게 든다.
남은 음식을 다 버리라는 것이냐면 물론 아니다. '먹지 않을 음식'은 바로 버리라는 것이다.
치킨이 남았다. 당신은 살을 발라놨다 내일 치킨마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남은 족발은 족발냉채로 재탄생시킬 계획이다. 남은 피자는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바삭하니 바로 냉동실에 넣었다. 언제 어떻게 먹을 것인지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들은 당연히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버릴까'를 가장 먼저 떠올린 것들을 생각해 보자. 살림 초보가 아닌 당신이, 계속해서 오르는 외식 물가에 몸이 피곤해도 집에서 요리하는 알뜰한 당신이 '버릴까'를 먼저 생각했다면 이건 다시 먹지 않을 것이거나 다른 요리로 탄생하기가 어려운 거다. 어떻게 해도 맛이 없어 결국 지금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이미, 그것도 충분히 알고 있는 거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경험치가 부족하다거나 긴가민가하다면 '아까우니까 일단 냉장고에 넣어보자' 하기 전에 이것을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해서 먹을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봐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괜히 냉장고 거치지 말고 지금 버리자. 그래도 고민된다면 지금 잠시 먼 곳을 응시하고 생각해 보자. '그때 남은 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했던 적이었던가. 단언컨대 없다.
이 음식은 버려야 하고, 저 음식은 남아도 냉장고에 들어야 한다는 매뉴얼이 있는 게 아니다. 집집마다 다르다. 그러나 우리 집 식탁에서 남은 이것이 냉장고 스탑 오버했다 나와서 그릇 다시 비우고 또 설거지하기를 이미 두 번 이상 했다면, 더 이상은 반복하지 말자. 그걸로 기준은 명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릴까'를 가장 먼저 떠올린 당신의 감을 믿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