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직원의 행색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며 조금만 옷을 갖춰 입으면 오늘 어디 가느냐, 약속이 있냐 집요하게 물으며 '나 미스 때 정말 예뻤는데'를 후렴구처럼 붙이는 P.
결혼 전에, 혹은 애 낳기 전에, 이런 것도 아니고 '미스 때'라니. 업무상 만난 나이 많은 고객이 직함 대신 '미스...누구?'라고 물어왔을 때 치밀어 오르던 화의 기억. 어쩐지 '미스'라는 말은 거북하단 말이다.
마치 방금 미용실에서 나온 듯한 굽실거리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또각또각 들어오는 L주임을 보며 P는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한다.
"나도 미스 때는 매일 미니스커트에 힐 신고 다녔는데."
현재의 P는 회사에 출근하기는 좀 그렇다 싶은 차림이다. 무릎 나온 추리닝 재질의 바지와 목이 늘어난 색 바랜 면티에는 역시나 얼룩이 있다. 어린아이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없어 그렇다며 이미 수백 번 들은 것 같은 말들을 이어간다. "미스 때는 나만 꾸미면 되잖아요. 나 미스 때는 풀메였는데. 진짜 쌩얼로 출근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지. 호호호."
L주임과 옆부서 동기가 '나 미스 때'를 시전하고 있는 P를 바라보며 "왜 저럴까?" 숙덕이는 장면을 목격한 뒤부터 당신은 P가 어쩐지 안쓰럽다. 미스 때 진짜 예뻤다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게 된다. 결혼한다고 이목구비가 바뀌는 것도 아닐 텐데. 예전에는 날씬했다가 살에 묻혀서 그런 걸까.
괜스레 자신의 얼굴도 책상 위 거울에 한번 비쳐보게 된다. 남들은 리즈시절이 하나씩 있다던데 아무리 돌아봐도 나 진짜 이때 예뻤지 하고 꼽을 수 있는 때가 없다. 왜 그때 그렇게 입고 돌아다녔을까 싶은 시기의 자신의 모습이 하나 둘 떠오르자 일이나 하자 싶다.
P의 미스 때 타령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렇게 아쉬우면 그때처럼 하고 다니지. 똑같이 어린아이들을 키워도 어쩜 저렇게 빈 틈 없이 잘 꾸미고 다닐까 싶은 직원들도 분명 있는데 왜 P는 깨끗한 옷을 골라 입는 노력마저 하지 않을까. 영 여건이 안될 수도 있을 테다. 그럼 그냥 잊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쩌면 저리 하루도 빠짐없이 과거를 곱씹는 걸까.
그날 오후 업무차 타 지점에서 방문한 H. 진짜로 그녀가 미스 때 함께 근무했다는 그녀는 P를 보자마자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안 변하고 똑같아!"라고 내지른다. "아니, 나 살도 찌고 아이고 그때는..."당황한 P의 주술관계라고는 조금도 없이 흘러나오는 문장에도 H는 눈치 없이 "응, 살은 쫌 더 찐 것 같다. 야 너 근데 그때도 똑같았어, 화장만 열심히 했지."란다. 아이고 이런.
@pixabay 당신은 불현듯 깨닫는다.
결혼 전에는 말랐는데. 애 낳기 전에는 날씬했는데. 이사 가려고 했던 집은 신축이었는데. 아이 낳기 전에는 집이 진짜 깨끗했는데.
참으로 부질없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지난날의 부귀영화 들여다 보기. 현재에 대한 아쉬움이 기억의 오류를 조장할 뿐이다.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현재 내 공간이 편하지 않은데 지난 시절을 되새김질한다고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게 있냐는 말이다.
지금 내가 할 수만큼 하자. 나중도 없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당장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