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라라라~~'
멜로디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BGM이 깔리며 환한 조명에 필터를 가득 씌워 환상적으로 변신한 공간을 보여주는 정리 프로그램. 보고 있는 당신마저 벅찼다. 그래도 정리 업체를 부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고정비용으로 잡아 놓은 학원비는 계속 늘어났다. 다음 학년 진도를 나간다, 방학 특강이다 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결제일에 맞춰 계속해서 이곳에서 학습을 이어나가지 않으면 아이 성적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절로 드는 문자가 왔다. 학원비 승인 문자를 보며 마음을 다잡아가며 출근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그렇게 거금을 들일 결심을 한 것은 순전히 수진 엄마 때문이다.
매일 치운다고 치우는데도 늘 어수선한 집을 보며 이건 뭐 정리도 아니고 청소만 하다 늙겠구나 한 토요일이었다. 수진 엄마가 뜬금없이 자기 집 거실을 찍어 보내며 "많이 변했어?"하고 묻는다. 깨끗이 치운 건 알겠는데 뭐가 변한 거냐고 답한 당신에게 그녀는 말하고 싶은 답답함을 못 이긴 듯 전화를 걸어왔다.
같은 아파트 같은 평수에 사는 J네 집이 갑자기 새집이 되었더라는 거다. 그 집 엄마가 문을 열어줬는데도 수진이랑 둘이서 순간 집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단다. 지난주에 왔다 갔는데 그 짧은 사이 어떻게 공사를 했나? 가구를 싹 바꿨나? 정리 업체 뭐 이런 걸 부른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주말 연휴에 그 엄마 동생의 진두지휘 하에 집안에 필요 없는 거 모조리 갖다 버리고 가구 배치 다시 하고 서랍 하나까지 싹 다 뒤집었다는 거다.
동생의 진두지휘로 환골탈태한 J네집 환골탈태한 그 집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날 하루에만 옷을 10벌 넘게 버렸다는 수진 엄마를 시작으로 친한 엄마들 사이 일대 열풍이 불어서 너도 나도 미친 듯이 치워대고 있단다. 지난달까지 자기랑 같이 큰 평수로 이사 가야 하나 그러고 있었는데 지금은 공간이 남는다며 수진 엄마는 당신마저 그 집을 가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생생한 간증을 이어갔다. 당신은 그녀와 함께 '어머 어머 어머 웬일이니, 웬일이니' 호들갑을 떨다가 씁쓸하게 "내 동생은 나보다 더 더러워"라는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했다.
동생의 진두지휘로 환골탈태한 J네집 그 집을 보고 정리할 의욕에 불탔다는 수진 엄마와 그 주변 사람과 달리 당신은 나보다 더한 동생을 떠올리며 정리 업체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그렇게 대대적으로 치우고 나니까 언제 가도 집이 반짝반짝하더라는 말을 들으니 나도 누가 싹 한번 집을 정리해 주고 나면 그 뒤부터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ixabay 저렴하면서도 후기가 괜찮은 정리 업체들에 연락을 하고 집 여기저기를 찍어 보내니 이 평수에 이런 청소 상태면 투입되는 인원이 최소 8-9명 정도가 되어야 하루에 끝날 수 있단다. 5명 정도가 할 수는 있지만 집안 모든 곳을 커버할 수 없어서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리 업체를 이용하는 데 예상보다도 훨씬 큰돈이 든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업체를 부르지 않으면 마치 당신 집이 곧 물건들로 터져버릴 것 같은 몹쓸 조바심과 자본의 힘을 빌어 대대적으로 한번 정리하면 정리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부푼 희망에 휩싸인 후였다.
이미지출처 https://naver.me/GQY17KoK 그 많은 인원이 하루 종일 당신에게 "사모님, 이거 버려요? 말아요?"를 물었다. 처음에는 뛰쳐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며 판단을 했지만 갈수록 시든 상추처럼 흐느적거리며 '그냥 버려주세요" 하게 됐다. 점심시간만이라도 귀가 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직접 노동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피곤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정리를 마친 집은 확연히 깨끗해졌다.
아무 데나 너저분하게 쌓여있던 물건들은 차곡차곡 단정하게 수납됐다.
집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은 모두 가구 안으로 들어갔고 옷장 밑에 박혀있던 옷들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옷들은 색깔별로 촤르륵 걸려 있었고 네모 반듯하게 접혀 착착착 열을 지어 세로로 서랍 안에 들어갔다. 심지어 양말 하나하나 같은 모양으로 접어 넣었다.
많은 책들은 전집 별로 분류가 되었고 그릇과 냄비도 색깔과 크기를 맞춰 보기 좋게 반듯반듯 열을 맞춰 있었다.
마치 사진을 찍었을 때 가장 깔끔하고 가장 깨끗해 보이는 각도와 방향으로 딱 맞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당신이 기대했던 것처럼 가구의 배치를 바꿔주고 공간을 다시 짜 동선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거나, 이 장소에 필요한 같은 종류의 물건들끼리 싹 모아주는 그런 '적극적인 정리'는 없었다. 낡은 수납장 하나는 과감히 버리고 싶었는데 그걸 버리면 물건 수납할 데가 없다고 오히려 말렸다.
사진 찍을 맛이 나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일주일도 안 가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현실이 됐다.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그때 그 포즈를 맞춰 놓기는 불가능했다. 보기 좋게 쌓인 그릇을 사용하려면 매번 몇 개씩 들어내야 했고 세탁한 옷은 그 모양대로 갤 수도, 세로로 끼워 넣기도 버거웠다.
@ pixabay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족들의 "그거 어딨어?"였다. 추가 비용까지 지불한 수십 개의 수납상자들은 온 사방 데에 쌓여있었다. 크기와 컬러를 통일해 쌓아 둔 모습은 깔끔했지만 물건을 찾기 위해 하나씩 꺼내 속을 파헤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식구들의 동선과 필요에 맞춰 하나하나 정리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돈 들여 반짝 청소해 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밀어붙였던 당신은 후회하는 티도 낼 수 없었고 스트레스는 쌓였다. 마음은 물론 한동안 살림도 팍팍하고 빈곤했다. 남의 집 사진만 보다가 업체가 왔다 간 날 저녁에 찍은 당신의 집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이날은 깨끗했는데' 중얼중얼 거리는 변화가 생겼을 뿐이다.
극단적인 방법이 있긴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지속이 안된다. 다이어트도, 미니멀 라이프도 어쩌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