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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r 17. 2023

안사면 100퍼센트 할인인데

 할인 쿠폰 안 쓴다고 누가 혼내는 것도 아니다.

 안사면 100퍼센트 할인인 거, 나도 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쇼핑앱을 열어야지, '뭐가 있나'하는 마음으로 쇼핑을 시작하는 순간, 이미 그건 소비하는 행동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거라는 깨달음까지 이미 몇 년 전에 얻었다.


 나름 잘하고 있지 않았던가.

 쇼핑을 위한 쇼핑을 하지 않겠다며 쓰잘데기 없이 쇼핑몰을 방황하는 걸 자제해 왔다.(자제하려고 노력해 왔다-가 사실과 근접하다.)

 최저가를 검색해 봤자 이래 저래 제한이 많은 걸 알기에 내 에너지를 절약하자며 아주 오래전부터 늘 사용하는 몇 가지 사이트만 이용해 왔다. 핸드폰에 무언가 많이 깔려 있는 것도 싫어서 어쩌다 한번 이용한 쇼핑앱바로바로 지운다. 모든 "혜택" 알림은 다 거부로 해놓았다.

 

 미니멀 라이프 근처에 있다는 이유 말고 지금 당장 쓰는 물건 둘 곳도 빠듯한 아주 작은 집에 살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세일한다고 쟁이지 않았고 1+1 상품도 애써 외면하고 중량당 단가가 확연히 싼 대용량 상품 대신 공간을 얻기 위해 애썼단 말이다.


 그런데 물가가 오른다. 물가가 오르면 더 안 쓰고 안 사게 되니 더욱 미니멀해질 것 같은데, 이게 아니란 말이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 최소한의 것이, 먹고 입고 집 안에서의 생활을 위한 것들이 또 있단 말이다.


 자주 가던 식당들 벽에 붙어 있는 가격표에는 메뉴마다 종이를 덧대 천 원 이천 원씩 가격이 올랐다. 하릴없이 집밥을 해 먹자며 나의 노동력을 갈아 넣었더니 외식비가 준 만큼 부식비가 그대로 증가해 총량은 같은 걸 확인하고는 화가 났다. 몇 개 담지도 않았는데 결제할 금액이 훅 많아져 내가 실수로 무언가를 두 개 담았나 확인했다. 이쯤이었다. 나도 모르게 1+1을 고르고, 다시 대용량 제품을 고르게 된 것이.


 다들 어려운 시기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또 참으로 희한한 건 그 비싸다는 가방은 마치 요 앞에서 누가 나눠주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자주 보이고 다들 그렇게 해외로 나간단 말이다. 코로나 핑계로 해외여행은 할 수 없다 했던 때가 좋았는데. 최소한의 것을 가지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미니멀 라이프 어디로 가고 불만 늘어난다.


 미니멀리스트는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다락같이 오르는 물가 속에 참으로 혼자만 꾸준한 월급을 가지고 살림을 꾸리며 단 5분 이야기를 나눈 직원마저 학원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학년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현실은, 반면 가깝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폰돈에 일희일비하며 마음이 빈곤한 이 시기에 나는 쿠폰을 꼭 쓰겠다며 유난을 떨고 있다.

 

 마케팅이 잘도 넘어가는 소비자가 여기 있었다.

 첫 화면부터가 할인행사 안내다.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 가격을 낮추는 단 이틀간의 할인 대전을 벌인단다.  너무나 눈에 쏙 들어오는 이미지와 문구로 몹시도 잘 만든단 말이다. 여기에 이건 좀 싸다 싶은 것들은 이미 모두 품절. 남아 있는 것이라도 사야만 나도 좀 부지런한 소비자가 될 것 같다. 거기에 생일이 포함된 달이 되자마자 생일을 축하한다며 엄청 후해 보이는 쿠폰들을 보내오기까지 했다.


  3만 원 이상을 사면 5천 원 할인해 준다는 쿠폰을 주는 사이트에는 나도 모르게 들어가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열심히 클릭을 하고  있다.

 바로 이거다. 필요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 쿠폰을 쓰기 위해, 물건을 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르고 있는 것. 아 쿠폰 안 쓰면 된다. 안 사는 게 남는 거다. 그만하자 그래놓고, 어차피 꼭 사야 하는 건데 이왕 사는 거 이럴 때 사야 되지 않나 하며 이미 손가락은 움직이고 있다.

 7만 원 이상부터 청구할인이 된다는 말에는 다음에 사도 되는 것을 미리 쟁이며 금액을 채우고 있다.  주말 한정 쿠폰이라는 말에 봄에 산 옷을 가을에 입지 못하는 급성장기 아이의 옷을 뒤지고 있으며 한번 입고 나가면 이미 무릎이 날금날금해지는 걸 생각하면 1+1 쿠폰이 적용되는 바지를 두 개 사야 하나 고민한다.


 그런데 이 쿠폰들이 참으로 야박하게 군단 말이다.

 홈쇼핑 매진임박도 아니고, 당일만 사용가능 그러면 어쩐지 꼭 오늘 사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다. 아. 이들은 천재인가.

 현명한 소비를 하겠다며 가격 비교를 해 최저가 사이트를 알아내고 기억나지 않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아내기 위해 휴대폰으로 인증을 몇 차례나 받아가며 겨우 로그인을 하면 사이트를 경유해서 들어오면 쿠폰 할인이 되지 않는다.

 금액을 다 맞췄는데 이상하다 했더니 할인율이 큰 특정 상품들은 제외란다. 도대체가 그 특정 상품이 뭔지 미리 좀 알려주면 안 되겠니.

 다른 사람들의 안목을 믿는다며 보통 판매순으로 정렬해 순식간에 쇼핑을 하던 것을 이제는 최저가순으로 정렬해 놓고 있다. 가성비 좋은 것을 잘 찾아냈다 기뻐했더니 쿠폰을 사용하려니 최소 3만 원, 심한 건 최소 10만 원 이상부터 적용 가능하다. 이쯤에서 포기하면 되는데 또 열심히 뒤졌더니만 아렛 카테고리는 제외고 정상제품 카테고리에서만 할인이 된다. 상제품 카테고리에서 살 수 있었다면 매장에서 샀지 핸드폰 뒤지지도 않는다고요.


 눈이 쓰라린 것을 참아가며 뒤지고 있다가 결국은 화 난다.

 전에 없이 할인 행사와 쿠폰에 팔랑팔랑해서 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여기저기 뒤지고 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났으면서, 역시나 또 남 탓을 한다.


아 이럴 거면 쿠폰 주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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