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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r 22. 2023

모셔둔 샤넬도 구찌도 없고

코로나19로 4년 만에 대면으로 진행되는 학부모 총회 때문에 난다.

연일 관련 기사가 올라온다. 모셔둔 샤넬백을 꺼낸다는 기사보았는데 샤넬은 과하고 구찌 정도를 고민한다는 제목에 또 클릭을 하고 읽고 있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호텔 신라 이부진 사장의 옷차림은 물론 의도치 않게 그녀가 입은 샤넬 트위드 재킷이 몇 년도에 출시되었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출처 DAUM 뉴스

 입사 초기에 지금의 내 나이 또래의 상사는 학부형인 친구가 학교에 간다 자신의 명품 백을 빌려 달라고 했다는 아주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신기한 일들은 진행 중이었다. 기사에서는 샤넬, 구찌, 에르메스 등 많은 브랜드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샤넬은 좀 그렇고 구찌 정도...' 하는 기사를 보며 '샤넬이 구찌보다 윗단계인가?'생각했는데 친구는 거기서 나아가 이 기사들이 샤넬 한국 판촉용 같다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한다. 똑똑한 것.

 

 그래도 언제나처럼 꿋꿋하게 핸드폰만 손에 쥐고 간다.

 엄청난 내공과 멘탈을 지녀 다른 사람 눈 따위 개의치 않는 경지에 올라서냐면 물론 아니다. 소에 딱히 옷차림에 신경 쓰고 다니지는 않으나 오늘은 내가 아니라 'OO 엄마' 아닌가. 아이가 끼는 문제에는 이상하게 초연할 수는 없다.


 남들은 봄이라도 나는 춥다며 털 달린 겉옷을 잘만 입고 다니면서 그날은 계절에 맞게 뭘 입어야 하나 괜히 고민을 한다. 머리가 쑥 길어서 가야 할 때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전 주에 미용실도 다녀왔다. 


 다만 모셔둔 샤넬백도 구찌백 다. 3초마다 한 번씩 보여서 '3초 백'이라고 이름 붙었던 가방 역시 없다. 나는 그 사이 2초에 해당된다. 옷을 네다섯 겹 껴 입어도 기사에 나온 700만 원은 나올 리 만무한 내게는 '하는 일 별로 없어요'라고 아무리 말해도 무언가 부담스러운 반대표나 녹색어머니회 같은 것이나  휴가를 낼 것인가 반차로 해결이 될 것인가 이런 이슈가  크게 다가온다. 총회와 묶인 공개수업에 아이가 발표를 할지 안 할지, 발표를 하면서 혹시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재미있자고 한 말이 혹시 수업 분위기를 흐리지는 않을지가 걱정이다. 아마 아이 머리카락 개수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전전긍긍하며 아이를 지켜보느라 다른 엄마들의 옷차림을 구경할 여유도 없을 게 분명하다.


 설령 본다 해도 안타깝게도 알아볼 수가 없다. 갖 명품 가방과 고급진 옷을 볼 수 있는 기회라던데. 샤넬, 구찌, 루이뷔통, 에르메스 정도는 나는 안 가지고 있더라도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는 새로운 이름도 너무나 많고 실물을 보아도 명품인지 아닌지도 알아챌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큰맘 먹고 가방을 질렀다고 보여주는 직원에게 참 반짝반짝 예쁘게 생겼다고 칭찬은 해 주었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다. 지나가던 다른 직원이 보고 호들갑을 떨며 자기도 몇 번이나 사려다 못 샀다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그것이 그렇게 핫한 명품 브랜드란다. 그나마 눈에 띄는 가방도 이러는데 옷은 말할 것도 없고 목걸이 팔찌 이런 건 이제 도저히 알 수 없다.


 아주 소신이 있어 명품 가방 따위 절대 사지 않겠다 한 것도 아니었데 말이다. 에 무언가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졌다. 퇴근하며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회사 집인데 출근할 때 가방을 바꾸는 것도 귀찮아 출근용 가방을 한 가지로 고정하고 나니 어찌나 편한지. 다른 외출에도 가방 들 이 많지 않다.

 그날의 옷차림에 따라 가방도 바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쩜 그렇게 부지런했을까 싶다. 그래도 가방을 다 비우지는 못하고 몇 개 가지고 있다. 나름 나는 고급지다고 가지고 있는 가방도 있는데 그 이름은 영 기사에서 보이지 않는다.

 수천만 원짜리 가방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것을 사기 위해 2년을 대기 리스트에 올려놓는다는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세계의 일이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느라 매일같이 들고 다니는 가방 끈이 너덜너덜해진 것을 발견한다. 텀블러 넣기에 딱 알맞은 크기에 가볍기까지 한 천가방이라 아주 좋았는데 책을 좀 넣었더니 이렇게 됐다. 호기롭게 바느질을 한번 해볼까 했더니 바늘이 뚝 부러졌다. 강력접착제를 사용해 봤는데 감쪽같이 붙었다. 이거 하나 붙여 놓고 마치 엄청난 기술로 수선한 것처럼 스스로 뿌듯해한다.


 나의 세계에는 샤넬과 구찌는 없지만 이런 소소한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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