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Aug 31. 2022

예능 보며 빈정 상하는 작은 마음을 어쩌냐

 뉴스 말고 챙겨서 보는 단 하나의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라마의 음모와 배신, 모략과 계략흥미진진한 게 아니라 너무 긴장이 되어 싫고 조금만 잔인해도 속이 메슥거려 못 보겠다. 그러면서 픽션보다도 더 잔혹하고 처참한 현실을 다루는 이 프로그램만큼 한 가지 사건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치는 것이 없다며 애청한다. 심지어 잔혹한 살인범 추적하는 도 인상을 쓰고 집중하고 있다. 아주 단편적인 사실 하나를 가지고 범인의 특징을 유추해 내는 과정이 CSI 시리즈 저리 가라다.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은 두 명의 피해자가 각각 길을 걷다가, 차에서 전화를 하다가 느닷없이 폭력을 당했다는 진술을 보고 '범인은 여성과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고 외모에 자신이 없으며 몸을 쓰는 직업일 것'이라고 추리하는 프로파일러를 보며 탄하며 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그러나 액으로 생명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살해당하고, 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 그 모든 것이 돈을 빼앗기 위해 계획된 것이고, 돈 없고 힘이 없으면 누명을  복역하고,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 심지어 신원확인이 어렵게 시체를 훼손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다 보면 결론은 하나, 역시 집 밖은 위험하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 정신건강에 해로우니 제발 그런 거 보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토요일 오후가 되면 나도 모르게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나오나 검색하고 있다.


 지난 주말 또다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다 끔찍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상태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돌린다. 요즘은 보고 나서 너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은 패스한다. 


 른 채널에서는 출산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연예인의 하루가 방영된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아이 분유를 타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첫 장면이다. 그 뒤부터 아이의 존재는 대화에서만 간간히 등장한다. 그녀 요리책을 집필하고 매니저를 위해 파스타를 요리해 함께 먹고 화장을 곱게 하고 외출해 영화 홍보를 한다. 넓은 집의 거대한 부엌에서 연어와 캐비어 등 다양고가의 재료와 훈제 기구 같은 처음 보는 신기한 조리도구를 활용해 요리를 해 지금껏 보지 못한 휘황찬란한 플레팅을 한다. 지인들과 홈파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그녀, 주제 역시 완벽한 그녀다.


 잠도 안 자고 부러 남의 집 구경을 시작해놓고 자꾸만 안겨 있는 아이 덕에 스킨조차 바르지 못하고 항상 면 100퍼센트의, 언제든지 수유를 할 수 있게 가슴에 지퍼가 달린 옷을 입고  아기띠로 아이를 안은 채 밥에 물 말아서 서서 둘둘 마시고 있던 저 시기의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슨 배틀도 아니고 아기 낳다 기절했던 이야기를 하면 여기저기서 너는 낫다, 나는 애 낳다가 죽을 뻔했다 하며 간증이 시작된다. 오로지 수유할 때와 내가 안고 있을 때만 잠을 자고, 눕히려고 하는 순간 다시 깨는 밥도 서서 먹고 3년 넘게 2시간 이상을 연속으로 깊이 자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할라 치면 등짝 센서가 없던 애들이 없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것 같지만 언제나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극한의 케이스가 넘쳐나는 곳, 그래서 함부로 극복 수기를 읊어서는 안 되는 곳, 바로 그곳이 육아 월드다. 당시 내가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상태였는지 디테일하게 서술할 마음도,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출산과 동시에 그동안의 나의 인생은 리셋됐고 아기 엄마 말고의 '나 자신'의 존재를 챙길 수 있었던 건 아주 한참 뒤의 일이었단 거다. 


 원래 연예인은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고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전제는 진즉 깔았다. 우리 집 전체 크기보다 더 큰 부엌이 나와도 역시 저들은 다르다, 이러고 말았는데 어찌하여 출산 후 아직 100일이 되지 않았다는 중간중간 나오는 그녀의 멘트에 이리도 위화감이 들며 이런 쫄보 심보가 되냐는 말이다.


"거지가 시기하는 사람은 백만장자가 아니다. 그건 자기보다 조금 형편이 나은 거지다."라는 에리히 프롬의 말이 스친다. 나와 전혀 다른 그녀의 삶에서 이미 지나간 과거의 나와 단 하나의 공통분모를 찾아 시기 질투하고 있었다.


어허, 이 작은 마음을 어쩐다.


이번 주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마트폰을 빌려줬을 뿐인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