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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l 05. 2023

작은 집에 만화방을 차렸습니다

 아침부터 열기로 창 너머 도로가 굽실거린다.

 이런 날 나갔다가는 해를 맞는 순간 몸이 흐물거릴 것 같다. 40대의 후진 체력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 아이가 토요일 목적지를 정하기 전에 선수를 친다.


 거실인 듯 방인 듯 부엌인 듯 딱히 구분되지 않는 작은 집의 주 공간은 카페가 됐다가, 보드게임방이 됐다, 스터디카페로 변했다가, 식당이 되었다 하며 바쁘다.


오늘은 만화방이다.

요새는 만화 카페라고 하더라만 역시 만화방이 입에 착 붙는다.


어떻게든 지금 가장 편하게 뒹굴 거릴 수 있는 자세를 찾아 자리를 옮겨 다니는 의자들을 만화방 모드로 세팅한다.

 만화방 선택에 있어 보유 도서보다 중요한 것은 제공 가능한 메뉴.

 아이와 둘이 앉아 만화방 메뉴부터 정한다.

 처음에 종이에 색연필로 메뉴를 쓰기 시작했으나 요구사항이 몹시 많다. 메뉴가 점점 늘어나며 A4용지를 벗어나고 결국 태블릿으로 작성을 한다. 아. 이래서 갈수록 전자 기기를 사용하는 거였다.

 에어컨이 풀 가동되는 쾌적한 만화방을 맞이한 아이는 신이 난다.

 역시나 만화책을 찾기 전 메뉴부터 정독하며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언제나 만화방 입장료보다 훨씬 더 나오는 음식 값. 만화책을 보러 오는 것인가 먹으러 오는 것인가 의심이 든다.  


 오늘은 마음껏 시켜 보아라. 마음이 이렇게 후할 수가 없다.

 입장과 동시에 당장 라면과 구운 계란 콜라를 주문한다.  


 나도 만화방 이용자가 되어 앉아서 쉬어볼까 했던 40대는 만화방 운영이 녹록지 않을 것을 직감한다. 자꾸만 먹을 것을 시켜대는 손님 덕에 조리하고 치우느라 분주하다.

 잠깐. 만화방에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왜 나의 노동은 무임금인가.


 나가면 돈이다.

 직접 물건을 구매하며 지출하는 금액보다 공간을 얻기 위한 지출이 많다. '어디 앉아 있기 위해' 밥을 먹고 '잠깐 앉아 이야기하기 위해' 카페를 가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지만 방해받지 않고 공부를 하겠다며 스터디 카페를 간다. 집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냐면, 물론 다 가능하다.

 세분화된 목적을 입힌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사용하기 위한 만만치 않은 입장료들. 나의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되는 쾌적한 공간을 위해 노동으로 벌어들인 임금을 소비한다.


 결국 작은 집의 만화방 운영을 위한 주말 특근의 대가를 지불받기로 전격 합의한다.

 

 분명 같은 공간인데 영업을 한다고 하니 마음가짐이 사뭇 달라진다.

 구운 계란 껍데기를 널브러트려 놓고 좋다고 낄낄대며 책장을 넘기는 아이 옆에서 조용히 뒷정리를 한다. 돈을 내고 이용하는 건데 잔소리는 당연히 금물이다. 라면과 컵라면을 하루에 먹는다고 해도 심호흡을 내쉬며 바로 조리에 들어간다.


  

 나름 저렴하게 책정했다 싶었던 음식들도 워낙 많이 시켜 먹었더니 4만 원에 육박한다. 4시간 이용권도 부족해 또 4시간을 끊겠다는 아이를 만류한다. 참으로 관대한 점주는 두 시간 가까이를 덤으로 주고 계란이 먹고 싶은데 비싸다는 손님에게 단백질이 필요하다며 막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만화방도 늘 부모 돈으로 해결했던 아이는 갱년기 점주의 변덕으로 만화방이 하루 만에 폐업을 선언할까 봐 처음으로 본인의 용돈으로 만화방 이용료를 기꺼이 지불한다.


 아이 용돈 통장에서 이번주 용돈 5천 원을 제하고 33,500원을 내 통장으로 이체한다.

 오우. 토요일에 부업으로 돈까지 벌다니.

 하루가 알차다.



커버이미지출처 https://blog.naver.com/heaven-knows/2229493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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