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것에 빠짝 빠짝 신경질이 올라오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울화가 샘솟는다면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피곤한가
배가 고픈가
카페인이 부족한가
졸린가
덥고 습한가
이도 저도 아니면 PMS인가
심지어 열대야였는데 자다 오한이 들어 깼다. 그 후로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개연성이라고는 콩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개꿈을 시리즈물로 연달아 꾸느라 자고 있는 중에도 피곤했다. 목 뒤편부터 찌릿거리며 시작되는 두통에 눈을 떴더니 역시나, 카페인 투입 시간이 지났다.
일어나자마자 커피부터 내려 마셨어야 했는데.
불현듯 새벽배송으로 현관문 앞에 도착해 있을 상자 속 냉동식품이 생각났다. 이것부터 정리하고 마셔야겠다는 건설적인 생각을 왜 했던가.
상자를 들여놓고 뜯어 냉장고에 옮긴다고 허리 몇 번 숙였다 폈다 하며 파닥거리는데 이미 덥다. 습도에 땀이 나려 하며 슬슬 언짢아진다.
에어컨 전원을 누르려다 창문을 열어 환기부터 한 뒤 이불을 개고서 켜야겠다는 쓰잘데기 없이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고 말았다.
열거한 모든 요소가 합일한 순간.
아주 사소한 말에 화가 버럭 났다. 느닷없음을 설명해 보겠다며 말을 덧붙이다 보니 만회는커녕길어지기만 했다. 내 화에 내가 말리는 것, 참담하다.
오롯이 나의 정신력과 의지만으로는 갱년기 날뛰는 호르몬과 감정기복을 제어할 수 없음을 잠시 잊었다.
가장 기본적이고 동물적인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것도 진행할 수 없음을 이미 배우지 않았는가.
출처: 생활공유연구소
에어컨을 켜고 아이스방탄커피를 만들어 들이켰다. 샤워를 하고 나와 소파에 앉으니 그제서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이제 몸이 힘들면 마음이 어지럽고 화가 난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값을 치른다.
오늘은 정말 안 되겠다 싶은 날에도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집에 돌아와 새 밥을 짓겠다고 기를 쓰는 짓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다른 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와 한갓진 저녁시간을 누리며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조금만 움직이면 얼굴이 소금기로 따끔거리는 것만 같은 자잘한 짜증이 몰려올 때는 에어컨을 켜야 한다. 작은 집의 최대 장점이 여기 있다. 에어컨을 틀면 순식간에 공기가 식는다. 공간이 작으니 부담이 덜하다. 전기요금이 오르긴 했자만 쾌적함을 누리기 위해 간다는 카페, 만화방, 호캉스에 드는 비용에 비할 수 없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내 몸 주변을 착 휘감고 있는 것 같던 후텁지근한 공기는 사라지고 고슬고슬 건조한 공기로 공간이 채워진다.
한여름에는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나 습도와 날벌레가 함께하는 산바람보다도 에어컨이다. 물기 하나 없이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실내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산의 풍경이 최고다. 에어컨은 휴머니즘이라 주장했던 지인의 말을 되새기며 공감한다.
내 몸은 심히 고되지만 내면의 평온함을 유지한다는 건 나 같은 범인에게는 불가능하다.
심호흡과 명상 따위로 감정을 조절하고 평정심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나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몸부터 편해야 한다.
체력과 에너지가 방전 직전일 때 보내오는 몸의 신호에 촉각을 세우고 즉각 대처한다.
한계에 도달한 심신을 꾸역꾸역 다그치며 몰아 수행하며 안으로 곪는 것도, 결국 중간에 터져 가시를 덧붙여 쏟아 내는 것도 재앙이다. 나와 내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를 생각하자. 나의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을 지출하는 우선순위를 매김에 있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최우선 순위인 마음의 평안을 위해 물질의 도움을 받고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가방과 옷을 사 대는 시발비용에 훨씬 미치지 못하며 플렉스를 위해 지불하는 나를 위한 한 끼 식사 값도 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상담료에 비할 수 없이 적으며 리프레시를 위해 떠나는 여행보다도 저렴하다며 어차피 쓰지 않을 돈이면서 마치 돈을 아낀 것 마냥 납득을 시킨다.
알면서도 순간 그 비용을 계산하며 나의 노동력으로 채워 넣으려고 하는 나와 마주칠 때는 스스로의 가치를 보다 높이 매기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이른다.
무엇보다 나의 건강과 에너지의 경제적 가치가 내가 오늘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불하는 가격보다 훨씬 더 크다는 확신을 다시 한번 심어 준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이만큼 지불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며 위만 쳐다보고 있던 뾰족한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고 지금의 나 자신에게 관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