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에 뜬금없이 공감하게 되는 순간과 마주치는 빈도가 늘어난다.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맛집 다 놔두고 회사 코앞 허름한 백반집에 가서 '오늘 정식'을 먹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집에서도 먹는 건데, 아침에도 먹고 나온 국과 반찬인데. 이왕 사 먹는 거 집에서 먹을 수 없는 다양한 메뉴들을 도장 깨기 하듯 하루씩 돌아가면서 먹으면 얼마나 좋나.
집에서는 쉽게 못 먹는 것이 집밥이라는 것을 알고 싶지 않아도 몹시도 잘 알게 된 지금 백반집 앞에 줄을 서 남의 밥상 스캔을 하고 있다.
나만 알게 된 게 아닌가 보다.
대부분 백반집은 규모가 작아 테이블이 몇 개 없다. 잰걸음으로 가 보아도 이미 만석에 줄까지 있다. 줄을 설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아직 비어있거나 방금 나온 것이 분명한 테이블들. 백반까지는 아니더라도 '밥'이 나오는 근처 식당에 가도 상태는 비슷하다.
공복에 커피만 마시고 나와 백반이 당겼던 날 하릴없이 다른 메뉴를 먹게 되면 그게 그렇게 아쉽다.
이미지출처 https://m.blog.naver.com/tj0908ww/222681812660 백반집에서 한 상을 받는 날.
오늘 하루 운이 좋은 것 같고 감사의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반찬을 준비해 정갈하게 내 앞에 차려주고 치워주는 호사를 누리게 되다니.
뚜껑을 제대로 집지 못할 정도의 뜨끈한 밥에 국 한 대접, 제철 나물, 식욕 돋우는 젓갈과 장아찌, 귀한 김치. 감자조림이나 감자채볶음 같은 엄마가 차려줬던 그 반찬들이 담긴 그릇들이 내 앞에 하나씩 놓이면 그렇게 고맙고 뿌듯할 수가 없다. 집에서는 먹지도 않는 어묵 조림은 왜 백반집에서 먹으면 이렇게 맛있단 말인가. 집에서 새 밥에 반찬 두 개만 만들도 버거운데 이게 도대체 몇 가지인가.
거기에 단단하게 말려 나온 계란말이나 풍덩 떠서 올려진 계란찜이 나오면 밥 숟가락을 뜨기도 전에 손이 간다.
분명 흔한 건데 백반집 반찬으로 딱 서너 개 나오는 계란말이는 무언가 다르다.
추가로 주문해 먹는 각종 재료들로 안이 꽉 찬, 혹은 치즈가 죽죽 늘어나는 두툼하고 커다란 계란말이와도 다르다.
딱 계란만 넣고 만든 단순한 색감의 이것은 작고 단단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딱히 다른 재료가 들은 것도 없는데 어쩜 이렇게 감칠맛이 나고 맛있단 말인가. 계란 본연의 고소한 맛인 걸까. 찌개나 볶음 같은 매콤한 주메뉴에 찰떡같이 어울린다. 참으로 맛있다.
맛있는 건 집에서도 먹자.
찌개를 끓인 날, 최고다.
야채를 다져 넣어 만드는 두툼한 계란말이 대신 계란에 세 가지 흰 가루만 딱 넣고 감칠맛 나는 백반집 계란말이를 뚝딱 만들어 낸다.
준비물
계란
소금, 설탕, 미원 딱 반티스푼씩
설탕은 계란 비린내를 잡아주고 미원은 식당 계란말이에서 맛볼 수 있는 바로 그 감칠맛을 낸다. 가장 작은 티스푼 딱 반만 넣으면 충분하다.
계란찜도 마찬가지. 계란에 물을 붓고 저 세 가지 흰 가루만 넣고 찜기에 쪄내면 식당 계란찜 완성이다.
오로지 계란찜과 계란말이를 위해 가장 작은 미원 한 봉지를 사서 사용한다.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는 중간중간 슬슬 말아주기만 하면 된다. 도마에 올려놓고 식혔다가 그대로 잘라 도마채 올려놓고 먹으면 끝. 케첩이 없어도 된다.
주 메뉴 한 가지에 계란말이 하나만 더하면 뭔가 갖춰진 집밥이 된다.
백반집 반찬 수를 쫓기란 참으로 어렵지만 이 심플한 계란말이는 냉장고에 늘 들어있는 계란만 있으면 뚝딱 만들 수 있으니 충분히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