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손 많이 갈 연령대의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 당신.
다른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는 시간, 이미 당신은 마치 어제 퇴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자세로 분주히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든 야근을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밥만 차려 놓고 남편에게 몽땅 미루고 일찍 나온 당신은 그러나 거의 한 달째 야근 중이다.
아침을 굶고 점심 한 끼를 먹는다. 내가 지금 숨을 쉬면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오후를 보냈건만 6시가 가까이 오는데 일은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녁을 먹으면 백 퍼센트 야근 확정이다. 일단 빨리 하고 집에 가자는 마음으로 일을 이어가다가 8시가 넘어서야 체념하고 저녁을 시켜 먹는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자 눈은 마치 흰 막이 낀 것처럼 침침하고 귀에서는 소리가 들렸으며 한 층만 계단을 올라도 무릎이 시리고 헉헉 소리가 나왔다. 사람들이 마흔마흔 하는 이유를 절감한다. 마흔이 딱 되자마자 몸 여기저기가 말썽이다. 쉽게 지쳤고 급격하게 노안이 찾아왔으며 뱃살이 불어났다.
최근 몸무게는 3kg이 넘게 쪘다.
큰 마음먹고 끊어놓았던 헬스장은 올해 대체 몇 번을 갔을까. 참으로 살갑게 '회원님, 운동하셔야죠'하는 트레이너의 문자와 전화마저 이제 뜸하다. 몸이 힘들면 살이라도 빠지면 좋으련만 건강과 몸무게는 비례하지 않는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 한숨이 나온다. 겉옷을 벗기도 전에 현관 앞에 널브러진 아이들 가방을 치우며 남편 눈치를 본다. 엄마는 대체 언제 오냐며 울다 잠들었다는 둘째를 보며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소파에 앉으면 절대 일어나지 못할 것을 안다. 일단 약부터 먹자. 이제 40인데 돋보기안경을 쓸 수는 없다. 약상자와 잔짐들이 표면의 반 정도를 덮고 있는 식탁 위에서 영양제 통들을 꺼낸다. 오메가 3와 루테인, 종합비타민까지 한입에 털어 넣는다. 이러다 나중에 시체가 썩지 않을지도 모른다. 머리빗은 왜 식탁 위에 있을까. 손을 뻗으려다 만다. 내일 식탁 좀 치워야지. 내일은 절대 일찍 가지 않으리라. 근무 시간을 대충 따져 시급으로 계산해 보니 헛웃음이 나오는 숫자가 나온다.
오랜만에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는 당신.
딱히 친하지도 않은데 항상 그렇게 큰 소리로 말을 시키고 자기가 얼마나 요새 힘든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직원 S가 앞에 보인다. 일부러 템포를 늦춰보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딱 만난다.
"어머 팀장님~ 살 빠졌네요~!"
3kg가 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린가.
" 아... 아니에요"
"아니구먼~ 살 많이 빠졌는데~!"
내 몸뚱아리를 가지고 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는 걸까.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당신은 순간 화가 솟구친다. 도대체 그동안 나를 얼마나 뚱뚱하게 본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 닮았다, 얼굴이 어떻다, 오늘 옷이 어떻다, 살이 빠졌나 보다...
S의 대화 시작은 한결같이 외모에 대한 언급이다. 본인은 언제나 칭찬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러나 칭찬인지 아닌지, 좋은 의도인지 아닌지는 화자가 아닌 청자가 판단한다. 반가웠던 적은 단언컨대 없다.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L주임에게도 촘촘한 S의 아는 척이 이어진다.
"아유 L주임 오늘 옷 너무 화사하다. 역시 젊은 게 좋다~나도 저 때는 저런 거 입고 다녔는데 말이야"
외모지적질과 '라떼는'을 한방에 시전 하다니. 능력자였군. '네네네네~' 하며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L주임에게 눈인사만 건넨다.
@pixabay 마가 끼었나.
오후 4시. 아무리 자주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소리가 들린다. C부장이다.
체구도 작은 그녀의 통굽 슬리퍼 끄는 소리는 유난하다. 돌 매달고 다니는 줄 알았다. 이 소리가 들리면 긴장해야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도대체 저 말 안에 숨겨놓은 의도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고민해야만 하는 상대가 C부장이다. 천지분간 못하고 네네 응수했다가 뒤통수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능하면 개인적으로는 엮이고 싶지 않은 회사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것도 상사로 만나면 여간 기가 빨리고 피곤한 게 아니다.
"이팀장, 얼굴 좋아졌네. 일이 편한가 봐?"
역시. 이럴 때 웃기만 해도 추가 업무가 배정된 다는 것을, 절대 웃지도 말아야 한다는 걸 그간의 기쁘지 않은 경험에서 배운 당신.
"그럴 리가요."
당신의 조근과 야근 행진을 알고 있는 근처 직원들까지 제발 저 입 좀 다물라 하는 마음으로 대동단결한다. 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으면.
보통 멘털을 지닌 이라면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거나, 나와 대화하고 싶지 않구나 하는 기운을 느끼면 기분이 상해서라도 말을 걸지 않게 마련인데 이 여자는 보통 멘털의 소유자가 아니다. 오늘도 역시 포기하지 않고 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염탐하듯 이것저것 물어봐대기 시작한다.
돌 매달고 다니는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C부장의 뒤를 노려보는 당신. 같은 각도로 싸한 표정을 발사하고 있는 민대리와 눈이 딱 마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