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은 특효약
이제 음식을 단순 입으로만 들어가는 것 이외의 얘기를 하려 한다. 딸이 매일 잠들기 전 하는 인사말이 있다. “엄마 내일 아침은 뭐야?” 다음 날 아들, 딸이 합창한다. 아침 등굣길에 문 열고 나서면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전에 하는 말은 “오늘 저녁은 뭐야?”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의 눈 만 마주치면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를 하루에도 몇 통씩 하시면서도 매번 똑같은 말씀 “밥은 먹었니?”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함께 하는 식사의 메뉴를 묻고 답하며 메뉴를 정하는 것은 소통의 시작이다. 가족이라는 단어로 지내면서 하루 혹은 일주일 내내 한자리에 앉아 함께 할 시간이 없다는 건 어쩌면 그 정도의 함께 할 시간이 없다는 건 그 정도의, 그만큼의 관심도 없다고 해석하고 싶다. 제발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라는 말은 말자. 그 먹고살기라는 문장에 1번이 바로 내 사람들 내 가족과 함께 잘 먹고 잘살기 위함 아니던가? 내 자녀가 좋아하는 음식, 내 부모가 잘하는 음식, 가족이 이런 행사에 차려내는 음식, 생일에는 꼭 시키는 요리, 일 년에 한 번 보는 친척 집 방문에는 꼭 대저 하는 음식 등등 그들만의 음식 문화가 크고 적게 자리 잡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가장 기본인 가족 구성원의 매일 혹은 적어도 한 주에 2~3회 이상은 서로가 함께 자리할 시간을 마련하여 함께 할 메뉴를 정하며 각자의 시간을 가족 구성원에 맞춰 내 시간을 할애하고 맞추는 것에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가족이고 식사다. 이미 청소년을 가진 가족이 함께 주 3회 저녁을 먹는 가족이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비행 청소년이 될 확률이 현저하게 낮다는 논문도 발표된 바 있다. 밥도 함께 먹을 애씀도 없으면서 성적이 떨어지면 그제야 ‘앉아봐!’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도대체 뭐가 문제니?’ 어느 날 갑자기 부모 노릇 하겠다고 갑자기 다가오면 너무 불편한 거다. 반대로 용돈이 필요하다고 갑자기 말 많고 애교 많은 자식이 되면 또한 불편한 거다. 평소에 서로의 식사와 하루를 묻는 가족이 소통되는 법이고 서로에 놓지 않는 관심으로 문제를 덜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기엔 너무 작지만 소중하고 간단명료한 오늘의 식사 메뉴가 제격이 아닐까? 소통의 원활하니 만병통치약의 원천은 또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 첫 번째에 특효약으로 가족 구성원이 좋아하는 메뉴를 알고 있고 함께 정하고 챙겨줄 수 있는 집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집밥 하면 ‘엄마의 몫’인가?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집에서 먹는 배달 음식이 될 수도 있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오래된 집안 전통 음식일 수도 있고 아빠가 해주는 일품요리가 될 수도 있다. 엄마가 해주는 밀키트 요리도 될 수 있고, 아들이 해주는 분식이 딸이 해주는 젤리비스킷버거가 될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모여 함께 맛보고 즐기고 씹고 뜯는 모든 것들인 음식을 나누는 그 시간을 말한다. 그러면서 몸에 안 좋은 음식이 나올 땐 이 앞전 글들을 보여주며 ‘음식이 약이다.’ 한번 읽어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음식은 몸과 마음을 모두 안정시켜 주는 안정제인 것이다. 소통의 조미료 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