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에서 콘서트를 했다.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큰 무대에 올라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모습이 기특해서 돌아오는 길에 연신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다.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야 하는데 유난히도 차가 막혀 아이들의 자랑은 반복되었다.
쓰레기가 가득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릭샤들, 오토바이들이 서로 뒤엉켜 마비가 된 좁은 골목길을 간신히 벗어나 넓은 도로로 나왔다. 숨을 좀 쉬나 싶었는데 하필 인도에서도 몇 없는 신호등에 걸려 또다시 세워진 차로 창밖을 구경했다. 아이들의 자랑도 멈추고 그들도 피곤했는지 조용히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창 밖에서는 태양 아래에 반짝이는 풍선들이 어디론가 춤을 추듯 가고 있었다. 풍선을 따라가니 신문에 대충 쌓인 장미꽃다발을 든 소년도 보였다. 풍선과 장미꽃을 든 그들은 10살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들 근처에 다 떨어진 천막 조가리를 깔고 풍선과 장미꽃을 쌓아둔 곳이 보였다. 3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여자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목이 메고 슬픔이 밀려왔다. 깡마른 그들은 세상의 냉혹함에 짓 눌러져 있는 듯 가벼워 보였고, 눈빛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 마치 세상의 무게를 혼자 지고 있는 듯 한없이 외롭고 고단해 보였다. 길바닥에서 삶을 영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의 가슴속 깊은 곳을 찌르는 듯하며, 떠올릴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그들의 눈동자에서 나오는 슬픈 응시와, 얼굴에 수 놓인 희미한 미소가 나를 압도했다. 차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내 아이들의 모습과 창 밖의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목이 막혀오는 듯한 답답함과 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그 눈빛에 느껴지는 무게와 고통을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이러한 현실 속에서 빼앗기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그저 바라만 보고 마음으로만 위로해야 하는 현실,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얼마나 더 잔혹한지를 직면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나의 무력감 속에서 나는 그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이기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황종선이라는 친구를 나는 기억해 냈다. 키가 작았던 나보다 그녀는 더 작았다. 옷은 늘 때가 잔뜩 뭍은 빨간색 줄무늬 옷과 맞지 않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늘 심한 악취가 났고 얼굴에도 까만 얼룩들이 있었다. 그녀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으려 했고 친구들은 늘 책상을 밀어 그녀와 멀리 떨어져 앉았다. 그녀는 충북 단양과 구단양을 잇는 다리밑에서 집도 없이 가족들과 살고 있었다. 학교 간식으로 빵과 우유를 신청해서 먹는 아이들과 달리 그녀는 늘 혼자 어디론가 조용히 나가 간식 시간을 보내다 들어오곤 했다. 그녀를 놀리는 많은 아이들과 달리 조용히 지켜만 보던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그녀는 유난히 큰 눈을 더 크게 떠 보이며 씩 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그녀의 웃음을 받아주지 못하고 그녀를 위해 목소리를 내 본 적도,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동정할 뿐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중년이 되어서도 나는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에게 소극적임을 깨닫는다. 어쩌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딸에게 물었다. “제이야, 저기 좀 봐. 너와 비슷해 보이는데 학교도 못 가고 풍선을 팔고 있네… 어떤 생각이 들어?” 딸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풍선을 든 아이가 왜 학교를 가지 못하는지 딸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가난이라는 단어, 그리고 그 단어가 만들어내는 현실은 좋은 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공부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에 있는 아이들의 하루가 어떨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딸은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딸의 대답 없는 침묵 속에서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아는 세상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조적인 현실은 나로 하여금 묵직한 무언가를 느끼게 했다. 풍선을 팔고 있는 아이의 손과 나의 딸의 손, 그 두 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있었다.
나는 다시 딸을 바라보았다. “가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는 잘 모를 거야. 하지만 세상에는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들도 많단다.” 딸은 조용히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무언가를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딸은 처음으로 자신의 세상이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풍선을 든 아이와 자신 사이에 놓인 차이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딸이 지금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 그리고 세상에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도 많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더 큰 세상을 만났을 때, 나처럼 소극적이 아니라 그 기억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풍선을 든 아이는 어느새 다른 차들을 향해 소리를 외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소년이 언젠가 풍선이 아닌 연필을 손에 쥐고 교실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풍선이 있는 하늘을 향해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