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 일깨운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
6개월이면 충분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그 편리함과 효율성의 일상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깨닫기에는.
사람은 한 곳의 세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환경을 지나며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해 봐야, 비로소 내가 누려온 것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낭만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낸 유럽살이 6개월 차, 나는 이 낯설고 불편한 시스템 속에서 한국을 다시 배우고 있다.
유럽 생활에 대한 로망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무너졌다. 주방의 미적 완성도를 책임지던 예쁜 디자인의 스메그(SMEG) 식기세척기는 고장이 나서, 그저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리기 직전이다.
집주인에게 수리 요청을 보낸 지 한참이 지났지만 집주인은 “본사와 연락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한국의 시스템하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문제다. 본사와 연락이 안 된다니? 본사에 소속된 서비스기사가 없다니? 결국엔 철물점의 기사가 와서 수리를 해주곤 갔지만, 완벽하게 고치진 못했다. 계기판은 볼 줄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해결되던 한국의 촘촘한 서비스망이, 그제야 얼마나 특별한 시스템이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일상의 질을 좌우하는 주거 환경은 더 당혹스럽다. 석회수 탓에 사용하는 전기온수기는 샤워조차 하나의 ‘전략’으로 만든다.
우리 집은 대략 30평인데 25리터의 온수기가 달려있었다. 성능도 좋지 않지만 용량이 작아 한 사람이 샤워를 마치면, 다음 사람은 물이 다시 데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부부가 함께 외출하려면, 누군가는 먼저 일어나 물을 선점해야 한다. 아무 때나 따뜻한 물로 펑펑 샤워할 수 있었던 한국의 일상이 얼마나 드문 환경이었는지, 이곳에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의료 시스템이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으려 해도 공공 의료 서비스(Seguridad Social)는 예약해도 진료를 받으려면 몇 달이 걸린다.
당장 열이 나고 통증이 있어도 “기다리라”는 말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대기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립병원을 선택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따라온다. 결국 참거나, 비용을 감수하거나—이 극단적인 선택지 앞에서, 언제든 접근 가능했던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것인지 새삼 체감하게 된다.
이곳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스페인에서는 공무원이 신보다 위에 있다.” 간절히 바라면 기적이라도 보여주는 신과 달리, 이곳의 행정은 그저 자신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느린 행정과 낡은 인프라를 온몸으로 겪다 보니, 문득 과거의 내가 떠올라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한국에서의 나는 늘 불만이 많았다. 버스가 제시간에 안 온다고 불평하고 행정 처리가 즉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비효율적이라며 쉽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 위에 서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을 때의 태도였다.
내가 당연하게 누렸던 빠름과 편리함은, 사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결과였다.
주말 없는 노동,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서비스, 그리고 ‘빨리’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지금의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의 불편함을 겪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보이지 않던 얼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이곳의 느긋함과 정서적 여유에는 분명 배울 점이 있다. 다만 그 여유가 때로는 누군가의 기다림과 불편함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 또한 함께 존재한다.
나는 여전히 이곳의 정신적인 여유를 부러워하면서도, 한국의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바라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결국 인생은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낡은 스페인 집에서 또 무엇이 고장 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무엇이 고장 나든 쉽게 빨리 고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내가 떠나온 그 성실하고 치열했던 세계에게 조용히 감사함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