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 아래의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다.
'영원한 봄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 라스팔마스(Las Palmas)에도 어김없이 12월이 찾아오고 있다. 11월 끝자락에 있는 이곳의 기온은 20도에서 22도 사이라 한국처럼 입김이 나오는 추위는 없지만, 이곳만의 방식으로, 그리고 이방인인 나의 방식으로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따뜻한 햇살 아래 붉은 카펫이 깔린 거리, 산더미처럼 쌓인 달콤한 빵,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꼭 필요한 전기장판까지. 라스팔마스에서 겨울을 나는 풍경들을 기록해 본다.
1. 야자수와 붉은 카펫: 거리의 크리스마스 풍경
한국에서 '겨울' 하면 앙상한 가지와 회색빛 하늘이 떠오르지만, 이곳의 겨울 풍경은 채도가 다르다.
백화점(El Corte Inglés) 앞 광장에는 강렬한 **붉은 카펫(Red Carpet)**이 깔렸고, 그 위로 아기자기한 목조 마켓 부스들이 들어섰다. 반팔 혹은 긴팔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 위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조명, 그리고 그 옆을 묵묵히 지키는 거대한 야자수의 조화는 볼 때마다 묘하고 이국적이다.
차가운 눈 대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크리스마스 마켓.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걷다 보면, 계절의 감각이 흐릿해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진다. 이곳의 12월은 춥지 않아서 더 낭만적일지도 모르겠다.
2. 크리스마스의 맛: 파네토네(Panettone)마치 예술 작품처럼 화려한 틴케이스에 담긴 것부터, 투박하지만 멋스러운 나무 바구니에 담긴 것까지.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이 달콤한 빵들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연말의 설렘 그 자체다.
피스타치오 크림이 꾸덕하게 들어간 초록색 박스, 밤(Marron Glacé)이 콕콕 박혀 고급스러운 단맛을 내는 빵, 그리고 노르망디 가염 버터를 써서 '단짠'의 정석을 보여주는 나무통 속의 파네토네까지.
어떤 것을 골라야 이 겨울이 더 달콤해질까? 행복한 고민 끝에 고른 파네토네 한 상자를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 벌써 입안 가득 크리스마스가 번지는 기분이다.
3. 밖보다 추운 실내: 생존 필수템 '전기장판'
라스팔마스의 겨울은 참 아이러니하다. 밖은 햇살 때문에 따뜻한데, 해가 지고 집 안으로 들어오면 으슬으슬한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이곳의 집들은 주로 돌바닥(타일)으로 되어 있고, 난방 시설(보일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섬 특유의 습기까지 더해지면 "밖보다 안이 더 춥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래서 오늘 장바구니의 마지막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전기 찜질기(전기요)**다.
우아한 파네토네 옆에 투박한 'Beurer' 전기 패드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잠들기 전 이불속을 데워주는 이 작은 온기가 타지 생활의 외로움과 추위를 녹여주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인 것을.
달콤한 빵 한 조각과 따뜻한 전기장판.
이 두 가지만 있다면, 라스팔마스에서의 낯선 겨울도 충분히 아늑할 것 같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