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바라보며 떠오르는것들
영원한 도플갱어... 나와 엄마
내 나이가 불혹을 넘길 때까지도 내 모든 판단과 결정의 키는 엄마가 갖고 있었다. 강요된 것도 아니었고, 그러지 않았어도 될 일들이었지만 난 왜 그랬는지 모르게 항상 엄마의 오케이 사인이 결정과 선택에 있어 늘 우선순위였다. 엄마가 보고 좋다 하시면 그게 좋은 것이었고, 엄마가 잘했다고 하시면 내 맘이 그제야 편해지고, 결정에 있어 안심이 되었다.
결정장애라고 할 수도 있고, 의존성이 심하다고 보일 수도 있는 일들이었지만 내가 그렇게 했었던 것은 아마도 그 속에는 엄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의 소심한 표현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흡족해하는 결정을 따름으로써 조금이라도 엄마가 기쁘길 바랬던 큰딸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난 오랜 세월 엄마의 삶에 대한 넋두리를 옆에서 들으면서 자랐었다. 엄마의 얘기 대로만 본다면 엄마의 인생은 한없이 불행했고, 아빠는 그 불행의 원인을 제공 한 사람이었다. 오로지 엄마의 현재 삶은 자식인 우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시간들이라고 하셨다. 엄마의 살아온 지난 얘기들의 마지막은 항상 엄마의 눈물 바람으로 끝이 났었고, 언제부턴가 난 엄마의 넋두리가 듣기에 불편 해 졌고, 그런 얘기 분위기가 만들어질라치면 자리를 피하고 싶어 졌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만 듣는다면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였지만 난 엄마의 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아빠의 딸이기도 했기에 엄마의 그런 얘기들이 조금은 불편했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엄마의 불행 아니 만족스럽지 못 한 결혼생활이 우리 자식들의 존재까지도 원하지 않았던 삶처럼 느껴져서 엄마의 이야기가 편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너희들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거라고, 진작에 네 아빠랑 헤어졌을 거라는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하실 때마다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자식인 나 조차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느덧 결혼생활을 한지가 2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부부로 산다는 것이 항상 꽃 길 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나이고, 좋은 부부 관계라는 것이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내가 보아 온 엄마는 감성도 풍부하고 누구보다도 로맨틱 한 삶을 꿈꾸는 소녀 같은 심성을 가진분이었는데 주변 환경이 그리고, 처해진 상황이 본인의 심성을 잊고 살게 만든 것 같아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엄마가 살아온 시대적 상황이 격변의 세월이었기 도 하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아오신 부모님 세대들은 거의 비슷하게 살아오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엄마가 좀 유별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시대도 시대였지만 자신의 이상처럼 잘 따라주지 않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무엇보다 컸었던 것 같다.
엄마의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의 지나친 음주로 인해 부유했던 엄마의 친정이 망했다는 사실과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합쳐져 엄마는 술에 대해 극도로 예민 해 하셨고,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셨을 때도 한 번쯤은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린 맘에도 들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를 심하게 질책하셨고, 집안은 시끄러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로 아빠의 술자리 횟수가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이 처음 가보는 초행길이었기에 행여 길을 잘못 들까 하는 불안감에 끊임없이 상대를 내 생각에 맞추려고 했던 것에서 불협화음이 생겼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부라는 것이 서로 다른 남이 만나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론 그 함께라는 것을 잊고 살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