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시대>를 읽고 : 다미앙과 카몽이스, 김상헌과 최명길
유럽인들은 수 세기에 걸쳐 ‘사제왕 요한’을 발견하기를 꿈꿨습니다. 동방 너머 어디인가에서 엄청나게 부유하고 강력한 기독교 왕국을 통치한다고 전해지던 전설 속의 왕. 그들은 형제 요한과 힘을 합쳐 이슬람을 포위하고 보편적인 기독교 제국을 실현하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에드워드 윌슨-리의 <물의 시대>는 묻습니다. 포르투갈이라는 작은 왕국은 왜 무역풍을 따라 희망봉을 건너 인도 코친에 이르는 그 험난한 길을 자처했는가? 작가는 다미앙 드 고이스와 루이스 드 카몽이스라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서로 다른 두 인물을 통해, 대항해시대가 단순한 발견의 역사가 아닌 치열한 인식의 충돌의 역사임을 보여줍니다.
종교 개혁의 파고 속에서 타 문화를 인정하고 소통하려 했던 다미앙의 여정은 북유럽을 향했습니다. 반면, 포르투갈 중심주의자 카몽이스는 제국주의로 이행하는 인도 항해 경로를 따라 남쪽으로 나아갑니다.
당시 포르투갈에게 대항해시대는 기독교 동맹의 발견이라는 ‘종교적 희망’과 향신료 시장 독점이라는 ‘경제적 기회’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마주한 진실은 그들을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기독교와 힌두교의 유사성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오히려 경악했습니다.
"유럽 문화의 중심인 기독교 계시를 유일무이한 것으로 볼 이유가 사라진다면? " 결국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악마가 놓은 덫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지식과 믿음을 지키는 선택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인 <남한산성>의 두 인물을 떠올립니다. 거의 같은 시대에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살던 이들의 가치관은 묘하게 닮은 점이 있습니다. 기존의 세계관을 사수하려 했던 김상헌(카몽이스)과, 무너지는 경계 위에서 새로운 질서를 꿈꿨던 최명길(다미앙). 명분과 실리의 두 갈래 속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한 두 인물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어떻게 달랐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다미앙과 카몽이스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 사는 것은 대체로 같으니까요.
역사의 평가는 냉혹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인정하고 소통했던 다미앙은 종교재판 끝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포르투갈 중심 사고에 머물렀던 카몽이스는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으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은 화력과 범선을 앞세워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제국주의의 선두에 서게 됩니다.
흔히 명나라의 쇄국정책을 비판하곤 합니다. 하지만 <물의 시대>는 흥미로운 반론을 제기합니다. 명나라의 쇄국이 물리적이었다면, 포르투갈의 쇄국은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틀에 가두는’ 정신적 쇄국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지에 쌓은 만리장성과 바다의 장벽으로 본국과 식민제국을 분리하는 해양의 장벽.
상대를 인정했기에 교류를 끊은 쪽과,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정복의 대상으로 삼은 쪽. 어느 쪽이 더 두려운 선택이었을까요? 대항해시대의 모험정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탐욕의 화려한 포장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흔히들 이 시대를 '발견의 시대'라 부르지만, 어쩌면 거대한 '상실의 시대'였는지도 모릅니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두려움을 정복이라는 이름의 탐욕으로 바꾼 이들이 만들어간 역사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렸는지, 심지어 그와 같은 사실조차 모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500년 전 다미앙 드 고이스가 마주했던 서늘한 종교재판의 칼날은, 오늘날 우리에게 또 다른 형태의 **'정신적 쇄국'**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익숙한 것들만 곁에 두려 하는 우리의 본능이, 진정으로 만나야 할 타자의 세계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