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자 했던 과거가 미래의 덫이 될 때
"어둠 속에서 대열은 바닥에 누워 신음하는 부상자들을 밟고 지나갔다. 연이은 포격에 끈적거리는 버터처럼 변한 진창에서 병사들은 거듭 비틀거리며 넘어졌고... 구덩이에 빠진 전우를 구하려고 손을 내어 주다가 둘 다 빠져 죽는 경우도 많았다."_ <베르됭 전투>, p.290
앨리스터 혼의 **<베르됭 전투(원제: The Price of Glory)>**는 전장의 처절한 비명과 후방의 나른한 작전 회의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해부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그들이 지불한 거대한 '피의 대가'에 비해 얻어낸 교훈이 얼마나 무가치했는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전쟁사에서 베르됭(Verdun)은 단순한 전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 이후 프랑스는 '방어와 요새'라는 도그마에 빠졌다. 그들은 베르됭에서 확인한 콘크리트 요새와 중포의 위력을 맹신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마지노선'이라는 거대한 위치에너지(mgh)의 응결체로 이어졌다. 반면, 독일은 그 정(靜)적인 에너지를 비웃듯, 전차라는 신무기를 통해 운동에너지(1/2mv^2)를 아르덴의 숲으로 보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대포'와 '참호'라는 위치에너지의 전쟁이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전차'로 표현되는 운동에너지의 전쟁이었다. 이러한 변화에 독일 수뇌부는 능동적으로 대처한 반면, 프랑스 수뇌부는 1차 대전 말기 진흙탕에 빠져있던 전차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승리의 환상에 박제되어 '뒷북치는 대비'만 거듭한 결과였다.
"프랑스에서는 1870년 이래로 군사 사상의 주기가 파멸적으로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았다.... 마지노선의 정신 구조는 너무 고통스러워 떠올릴 수가 없다." _ <베르됭 전투>, p.536
이러한 전략적 오판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저자는 그것이 전장이라는 '현장'이 아닌 '후방의 작전 테이블'에서 얻어진 교훈이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보병이 진창에서 익사할 때, 후방의 지휘부는 적과 아군을 숫자로만 인식하는 거리감을 유지했다. 전장에서 멀어질수록 결정은 냉혹해지고,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단절 속에서 또 다른 갈등은 잉태되어 갔고, 서로가 전쟁을 통해 얻은 교훈은 반편에 불과했다.
"보병과 포병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지상군이 중폭격기 승무원에게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지상군은 그들이 호사스럽게도 적군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다." _ <베르됭 전투>, p.296
지상전의 양상은 1차 대전의 참호전에서 2차 대전의 전차전으로, 그리고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드론 정밀 타격으로 진화해 왔다. 이제 전쟁은 AI와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대리전'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피와 살이 튀는 공포 대신 모니터 뒤에서 마우스로 상대를 제압하는 미래의 전쟁은 과연 더 인도적일까? 오히려 공감이 거세된 채 더 정교하게 참혹해질 것이다.
앨리스터 혼이 베르됭의 비극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결국 '인간성 회복'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장이 없는 기술은 언제든 우리를 다시 1916년의 진창으로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정점에서 다시 인문학을 펼쳐야 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베르됭 전투'에서 배울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