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빠의 여권.
2019년에 만들었지만, 한 번도 쓰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가족 여행을 가보자며 아빠에게 여권을 만들라고 했었는데 정작 한 번도 함께 떠나지 못한 채, 아빠는 2021년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때는 몰랐다. 여권 한 장이 이렇게나 무거운 감정으로 다가올 줄. 그 안에 담긴 기대와 설렘이, 이제는 미안함과 후회로 남을 줄.
‘미루지 말 걸’
요즘, 회차가 거듭할수록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애틋하게 하는 폭싹 속았수다를 봐도 그렇다. 함께한 시간은 한 사람의 부재로 더없이 추억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 앞에서 후회하는 건,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어버린다.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날이 좋으면 산책도 가고, 장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일상 속 엄마와의 밀도 있는 시간을 귀하게 생각해야지 다짐하며
아빠가 가고 싶어 하셨던 곳이 있었다면,
내가 대신 걸어보려고 한다.
아빠가 바라보지 못한 풍경을 내 눈으로 담고,
아빠가 느끼지 못한 바람을 내 온몸으로 맞으며,
아빠와 함께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걸어보려고 한다.
그러면 언젠가,
이 미안함도 조금은 따뜻한 기억으로 바뀔까.
아빠와 함께한 시간들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믿으며.
살아 있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더 깊이, 더 진심으로 끌어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