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ALD Jun 02. 2017

서재 결혼 시키기

모든 것은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책을 정말 좋아하고,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생이 모두 책과 연관이 있을까?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이번에 읽은 책 <서재 결혼 시키기>를 만났다. 그 책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고 1~2구절 인용한 것이 다였지만, 서재를 결혼시킨다는 제목에 혹하여 다음 읽을 책으로 점찍어 놓았다가 드디어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서양권의 책들을 읽는데 좀 느린 편이다. 헷갈리는 영어권 이름도 많이 나오고 사고방식도 달라서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나 일본 작가가 쓴 책보다 느리게 읽힌다. 나는 동양인이라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이 책도 읽는데 사실은 제법 걸렸다. 

책은 여러개의 짧은 에세이로 묶여있는데, 그 에세이 중 하나의 제목이 <서재 결혼 시키기>이다. 저자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남편 역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주변에 글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에세이들은 저자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책, 글'과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다. 물론 작가들의 여러 에세이를 읽어본 바로는 이렇게 정말 책에 파.묻.혀 살지 않는 작가들도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말 삶이 1~10이라면, 1~10까지 모두 책과 관련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물론 책에 관련된 얘기만 썼으니 그렇겠지?) 각자의 서재마다 정리 방법이 있고, 잘못된 철자를 찾고, 2번 이상 읽지 않은 책이 없을 만큼 책의 삶을 사는 작가의 책이다. 



                                              

제목이 서재 결혼시키기라서 나도 책장에 놓고 찍어봤다.




우리 침대 옆에 있는 서가에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었다. "친구나 친척이 준 책" (23p)
가족 혹은 친구와 책을 주고받았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갑자기 했다. '선물받은 책'이라는 범주를 가진 서가를 만들고 싶어서? 



극지방의 일등급 미니멀리즘 (43p)
미니멀리즘의 끝판왕을 극지방으로 표현하니 그냥 웃겨서. 단어만 들어도 미니멀하게 느껴진다. 대신 춥기도.



패디먼 가족은 육체적 사랑의 신봉자들이었다. 우리에게 책의 말은 거룩하지만, 그 말이 담고 있는 종이, 천, 판지, 풀, 실, 잉크는 단순한 그륵이었으며, 그것을 원하는 대로 필요한 대로 무람없이 다루는 것은 결코 신성모독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험하게 다루는 것이 불경의 표시가 아니라 친밀함의 표시였다. (64p)
나는 책을 예의바르게 떠받드는 궁정식 사랑의 신봉자이다. (64p 윗부분에 나옴) 책에는 절대 낙서하지 않고 설사 책등이 갈라질까 쫙 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작가 가족은 책 속의 글만이 소중하며 나머지는 단순한 그릇이라 하니 이리 접고, 적고 한다. 어찌 보면 이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이로 된 책이라는 '물건'을 소중히 한 것 아닐까? (독서노트를 이곳에 쓰는 것도 나중에 수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책에 낙서하기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스웨터를 선물하면서 함께 보낸 카드는 스웨터와 곧 헤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책과 거기에 적은 헌사는 영구히 결합되어 있다. (86p)
헌사는 위의 이유 떄문에 소중한 것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족쇄나 숨기고 싶은 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멋진 헌사를 써서 책을 선물해보고 싶다.



"현장 독서" - 책이 묘사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그 책을 읽는 것 (95p)
나는 여행하기 전에 미리 그 도시에 대한 에세이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글을 읽으면 그 도시의 느낌을 미리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글로 미리 가는) 답사 독서'려나? 만약 다음에 읽을 책이 어떤 '곳'에 대한 책이라면 현장 독서를 해봐야겠다.



나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펜으로 쓸 계획이었다. 감정적인 이유도 있었고, 또 펜으로 써야 속도가 느려져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에서 실제로 조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35p)
컴퓨터로 타이핑 하는 것은 왠지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서 쉽게 틀리고 또 글을 쉽게 읽는다. (쉽게라는 의미는 스르륵 훑어봐버린다는 뜻) 역시 연필과 펜으로 쓰는 것이 조심하고 진지하게 글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인 것 같다. (물론 편리함은 컴퓨터를 따라올 수 없지만..) 일장일단!



영국의 비평가 홀브룩 잭슨은 이렇게 썼다. "책은 음식이며, 도서관은 몇 개의 접시에 실려 나오는 고기 요리다. 우리는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좋아하거나 필요해서 먹는데, 대부분은 좋아해서 먹는다." 찰스 램과 리 헌트를 보고 그들의 친구는 "마치 즙이 많은 잘 익은 과일을 먹듯이 입맛을 다시며 시의 진귀한 구절의 맛"을 음미한다고 묘사했다. 갈릴레오는 <성난 오를란도>를 멜론 밭에 비유했고, 코벤트리 팻모는 셰익스피어를 구운 쇠고기에 비유했으며,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는 투키디데스를 파르메산 치즈에 비유했다. (138p)
책과 글에 대한 다양한 비유



음식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가끔 단어 하나가 연상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140p)
음식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많은 단어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때로는 그것으로 인해 깊은 생각의 바다로 빠지기도 한다. 



전도서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48p)
이 책에서 성경 전도서의 구절을 인용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뭔가 허탈해지는 느낌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니...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는 어쩌면 허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카탈로그적 명령" ~~ (ex : 억센 발톱을 쉽게 깎아라. 등등) 이런 명령에는 늘 유순한 앤 F.라도 반항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안 하겠다! (165p)
광고나 마케팅을 할 때 쉬이 하는 실수가 있는데, 우리 이야기만 '주장'하는 것이고, 하나는 '명령'하는 것이다. 유순한 사람도 반항할 것이라니 꼭 명심해야겠다.ㅋㅋㅋㅋ



내 딸은 일곱 살인데, 다른 2학년 부모 가운데는 자식이 재미삼아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집에 가 보면 아이들 방에는 값비싼 책들이 빽빽하지만, 부모의 방은 텅 비어 있다. (172p)
책장이 꼭 필요한 이유. (혹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야 할 이유)
그리고, 내가 부모님에게 아쉬운 이유.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책을 강요하지 않았다. 전.혀.)


헌책방에 가면 지저분한 실내, 졸고 있는 고양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상태를 더 좋아한다. (205p)
헌책방에 대한 흔한 이미지. 표현을 참고하기 위해 스크랩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독병'에 걸려 '1년에 100권 읽기' 이런 것을 한다. 며칠 전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에게 하루에 책 10권을 읽으면 500원을 준다는 제안을 하는 것을 들었다. '저렇게 하면 과연 책의 내용은 들어올까?' 싶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책과 글에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길고 긴 서평보다 그 책에 담긴 몇 문장이 그 책을 더 사고 싶게 만들기 때문에

오늘도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저의 독서노트를 공유합니다. 

(라고 쓰지만 결국은 내 독서노트를 쓰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