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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ALD Jun 02. 2017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이지원 산문집

'쏜살문고'라는 것을 <자기만의 방>을 사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방> 완독에 실패하면서 (너무 안읽혔다ㅠ) 다른 쏜살문고가 뭐 없나 보다가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를 접했다. 그리고 구매했다. '이건 무슨 책인데 제목이 이렇지?' 라는 생각으로. 


'명치를 맞는다'는 표현에서 오는 강렬함은 책에서도 이어져있다. 시시콜콜한(혹은 그렇지 않은) 것들을 비판과 비난의 그 어디쯤의 뉘앙스를 풍기는 글은 읽는 이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한잔 들이키게 해준다. 감성적이고 예쁘고 고상한척 다 하는 요즘 책에 비하면 오히려 지금 세상의 우리와 더 닮아있다는 생각마져 든다.






[개선된 것처럼]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려면 많은 돈이 들고, 조직이 개선되는 데는 희생이 따른다. 물론, 제품과 서비스가 개선된 것처럼 보이게 하기는 무척 쉽다. (20p)
일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제품이 '새것인 것처럼, 개선된 것처럼' 둔갑해서 나온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NEW'를 달고 신제품 매대에 올라가 있는다. 회사에서 하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허무하다. 안팔리는 것이였는데 그것을 살짝 새것으로 둔갑한다 하더라도 내용은 변하지 않는데, 그것이 갑자기 번쩍하고 잘 팔릴 것이라 기대하는 것일까?



[음모와 망상]

당신을 쥐어짜려는 잘못된 인간에게 아첨하고 투쟁해서 빌어먹느라 소모하는 노력을 당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쏟는 편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21p)
역시나 회사에서, 아첨하고 투정하며 자기편을 만드는 사람들. 자신의 추종자가 있음이 기분 좋고 마음의 안심을 얻는 사람 등등.. 생각보다 회사라는 곳은 이런 정치같지 않은 '정치'가 판치는 세상이다. 퇴사하는 사람의 절반은 이런 세상에 신물난 사람들일 수 있다.



[구원은 없다]

여기에는 어떤 선악도, 구원도 없다. 자연은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기도할 뿐.(22p)
자연은 언제나 위대하고 인간은 자연 앞에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자.



[빛과 그림자]

선이란 그런 것이다. 인간이 따먹은 과일이 선과 혹은 악과가 아니라 선악과였음은 지당하다. 선한 것을 규정할 때마다 그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는 악으로 치부된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23p)
맞는 말이지만, 선과 악으로만 나누는 흑백논리에 빠지게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불안하지 않아서 불안하네요]

떠도는 분위기는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음악에 조예가 깊고, 신형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사랑하며, 무인양품이나 애플에서 어떤 하얀 물체를 구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단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 나는 지금 불안해야 할까? (31p)
유행을 길게 풀어쓴 글.



[과자 봉지를 뜯는 세 가지 방법]

김 사장은 다른 사람에게 과자를 만들어 팔 만큼 과자를 사랑할까?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40p)
회사를 다녀보면, 자기 제품에 '사랑'이 결여된 사람이 참 많다.
문제는 두가지다. 그 사람의 마음이 문제거나, 회사가(높은 사람들이) 직원이 사랑하지 못할 제품을 만들자고 하거나.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어 주는 배려가 귀하다. (43p)
마케팅을 하는 사람으로써, 제품PM을 하는 사람으로써 이 문장은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할 문장이다. '올바르게'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면 생각이 참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예전에 어떤 갤러리에 갔다가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는데, 강한 아우라에 심장이 쪼글아들었던 기억이 있다. (49p)
이 작가가 얼마나 찌질한지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이 글이 우리에게 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교수다.)



[멘토 전성시대]

바야흐로 멘토의 시대다. 창업 멘토, CEO 멘토, 부동산 멘토, 투자 멘토, 힐링 멘토, 다이어트 멘토... (57p)
진짜 요즘은 뭣도 아닌 것들이 멘토랍시고 교육이랍시고 돈을 받고 사람들을 모집한다. 내용은 그게 그거인 뻔한 내용들. 정말 그런 사람들이 판치는 것도 웃기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배웠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다. 멘토 멘티 둘 다 역겹다.

인터넷 세상을 받아들인 첫 세대라는 자의식이 우리를 정신적 독립을 부추겼다. (58p)
그에 반해 지금의 세대는 인터넷 세상에 넘치는 정보의 홍수로 인해 자기 의사결정 하나 자기 스스로 하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이거 어때요?', '이거 살까요?', '오늘 이 옷 입어도 될까요?' 다. 니들이 알아서 좀 해라. 한심하다.

힐링은 과거에 여행, 목욕, 수다, 산책, 외식, 낮잠이라고 부르던 활동을 자신에게 응석부리기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새롭게 규정한 상위 개념이다. (61p)
힐링의 해석

돌아서면 잊을 헛깨비 정보를 탐독하며, 다들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은 질투심에 정신 못 차리고 있지는 않은지. 불안에 등 떠밀려 이것저것 따라 해 봤자 생각만큼 신나지 않을걸. 다른사람의 성공담에 의지해서는, 스마트폰을 통해 얻어지는 잡지식에 휘둘려서는 내 삶을 살 수 없다. (62p)
인터넷이 주는, SNS가 주는 악. 우리는 이것을 항상 경계하며 인터넷과 SNS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힘들겠지만.



[글자꼴로 말해요 - 주변은 글자로 가득하다]

기업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매끈매끈한 글자에서는 도무지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기업 홍보팀은 일찍이 이 점을 간파하고 때때로 손으로 쓴 글자체를 광고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잠깐은 속아 줬지만 요즘엔 이마저도 낡은 상술로 보일 뿐이다. 상업적 광고에서는 어떤 글자꼴이 나와도 위선의 냄새가 난다. 이는 글자꼴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식으로 무장한 메시지 성격 탓으로 볼 수 있다. (89p)
광고가 '주장' 만으로만 이루어 졌을 경우 가식으로 무장한 메시지가 된다. 나는 광고/마케팅을 담당하면서 일찍이 이것에 대한 위험성을 파악했고, 광고/마케팅 활동에 나(또는 회사)의 주장이 최소화되도록 기획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행복의 냄새가 나는 공기]

많은 현대인이 행복을 실감하지 못하는 현상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목적지 없이 남들 좋다는 대로 질질 끌려가는 인생의 끝에는 피로와 피해의식만이 남는다. 도착지를 설정하는 일, 즉 나만의 행복을 규정하는 성찰은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다. (116p)
내 삶의 주인이 되기. 도착지를 설정하기.


물질에서 오는 행복은 휘발성이 강하다. (118p)
최근에 들었던 교회의 설교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물질에서 행복을 얻으려 하지 말고 내면에서 찾으라는 말은 건방진 말이다. 물질에서도 분명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질과 내면에서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며 나의 행복이 가장 극대화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나누어야 한다.)



[디자이너는 연봉이 얼마예요?]

취업 걱정은 없었다. 1990년대였으니까, 디자인학과를 졸업하면 밥벌이는 확보해 놓은 티켓이였다. (126p)
이런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니 사회로 들어오는 청년들과 사회적, 이념적으로 부딪힐 수 밖에. 꼰대라는 것은 이미 20대부터 내재되어있던 본인의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그냥 애초에 능력이 없는 것이다.



[왜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려 하십니까]

유대인의 안식일은 노는 날이 아니라 노동하지 않는 날이다. 유흥 활동을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난방기나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일체의 상업 활동이 금지되고, 이날을 활용해 대청소를 해야 한다. (153p)
지금의 나의 자발적 안식시즌을 '노는 날'로 사용하지 말고 '노동하지 않되 개발하는 날'로 삼길.







우리 주변의 흔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비난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글.

세상을 약간 삐뚤게 보고 싶어 진다면 이 책으로 대신하길. 






길고 긴 서평보다 그 책에 담긴 몇 문장이 그 책을 더 사고 싶게 만들기 때문에

오늘도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저의 독서노트를 공유합니다. 

(라고 쓰지만 결국은 내 독서노트를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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